요즘의 내게는 이른바 슬럼프라고 할만한 것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슬럼프는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이기도 하지만, 영화라는 산업과 그것의 문화적인 측면에 대해 점점 실망하게 되었다는게 정확하다. 그렇지 않은가? 굳이 다른 예를 들지 않아도 엄청나게 장사가 잘 되는 현재의 이 미친 히어로 프랜차이즈라면 설명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영화를 구매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순수하다. 삶에 지친 그들은 실제로는 있을 수도 없는 - 비대한 악의를 가진 - 안타고니스트를 신나게 물리치는 영웅들의 위대한 자기희생에 감동하고 즐거워하며 상영시간 동안만이라도 그들 자신의 삶을 위로한다. 그리고 이런 그들을 아무도 탓할 수는 없다. 언제나 그렇듯 공급이 문제라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런 문제라면 책 한 권을 쓸 ..
2019/02/26 - [황색문화/영화] - 실사화의 늪에서 길을 잃다. 上 투자와 벽 이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야기로 '어느 가족'을 제작하면서 고레에다 감독은 후지TV의 지원과 투자를 받아서 힘겹게 영화를 촬영했다. 이제 일본에서 더이상 거대 영화사들은 오리지널 각본에 투자해주지 않으며 그나마 작품성을 보고 오리지널 각본에 한정된 예산을 어느 정도 지원해 영화를 제작해 주는 곳이 대형 민영방송사이자 최근 현 일본 정권과 은근히 성향적으로 대립중인 후지TV밖에 남지 않았고 그나마도 시나리오가 너무 많아서 승인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칸 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명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역시도 2019년 개봉예정인 신작은 아예 프랑스에서 프랑스 자본으로 카르틴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에..
은혼, 강철의 연금술사, 진격의 거인.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일본에서도 매우 유명할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만화이며 두 번째는 실사판 영화가 제작되었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오시이 마모루(押井守) 원작의 애니메이션으로 잘 알려진 인랑과 웹툰으로 잘 알려진 신과 함께의 실사화가 있었다. 이 결과들은 다르게 나타났는데, 똑같이 상당한 제작비를 들이고도 희비가 갈렸다. 강철의 연금술사, 죠죠의 기묘한 모험, 진격의 거인이라는 굵직굵직한 만화 원작을 가진 작품들은 모두 흥행에서 처참하게 실패했고 우리나라 역시 여러가지 의혹과 함께 영화판 인랑은 흥행실패를 맛보았다. 제대로 흥행했다고 할만한 성과를 올린 작품은 오구리 슌(小栗旬)과 하시모토 칸나(橋本環奈)를 필두로..
가끔 나는 '이야기의 순수함'에 대해서 고민한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인물의 과도한 물욕과 살의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사실 얼마나 부자연스러운가? 물론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지만 내가 아는 한은, 그렇지 않은 인간이 훨씬 더 많다. 또한 '영화 같다'는 말은 대개 '현실 같지 않다'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영화가 사실이나 현실에서 꼭 많이 벗어나야만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문명사회의 근본적인 문제, 그리고 가족과 이웃이라는 공동체에 대해 굉장히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진심을 다해 접근하는 영화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이 영화에는 컴퓨터 그래픽도, 상황과 인물을 설명하는 쓸데없는 대사도, 감정 과잉의 BGM도, 만들어진 안타고니스트도 없다. 바로 이라는 2018년산 영화다. 영화는 숲속에 ..
킬링 군터 (2017)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띄고 있는 이 코미디 영화는,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는 Arnold Schwarzenegger의 컨트리송보다도 재미가 없다. 특색 있는 캐릭터들이 눈에 띄는 것 같다만 과장되고 부자연스러운 부조리는 차라리 시도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또한 한 사람이 감독과 주연배우를 동시에 맡는 건 거의 미친 짓이다. 워렌 비티는 영화를 살리고 연기에 실패했지만 차라리 그 편이 낫지, 자기 캐릭터는 살리고 영화는 말아먹다니 대체 그건 무슨 짓이란 말인가? 러닝타임이 96분밖에 되지 않는데도 시간이 아까울 정도다. 대니 콜린스 (2015) 알 파치노와 존 레논 아니었다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영화. 2019년이나 되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늦어도 아주 많이 늦었지만 ..
볼링 포 콜럼바인 (2002) "And the greatest benefit of all, of terrorized public, is that the cooperating political leaders can get away with just about anything." 다큐멘터리는 재미없다는 편견을 마이클 무어의 을 관람하는 동안은 내려놓아도 될 것 같다. 말하고 싶은 주제가 충분히 진지해지기 이전까지 그는 온갖 바보들을 활용해서 관객을 즐겁게 해준다. 그는 엄청난 유머감각을 지닌 사람이며, 게다가 그가 무엇을 파헤치고 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용기 또한 대단한 사람이다. 영화로서 지녀야 할 미덕은 차고 넘치도록 갖추었으니 두려워 말고 경험하기를 바란다. 대탈주 (1963) 러닝타임이 169분이나 되..
버드맨 (2014) 어떤 사람은 말한다. 영화는 연극의 연장선에 있다고. 그러나 그런 명제를 만족하려면 정도의 조건은 갖추어야 할 것이다. 쇼 비즈니스의 구성원, 배우, 아버지, 히어로, 전 남편 등 많은 이름이 주어진 마이클 키튼의 어깨가 무겁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롱테이크 무비를 보면 그 긴박감 때문에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불쾌감이 들 정도인데, 역시 그랬다. 왜 롱테이크 무비는 보고 있으면 좀 조마조마하지 않은가. 마이클 키튼의 캐릭터 역시 굉장히 조마조마하고 위태롭다. 또한 요즘 헐리우드가 히어로 프랜차이즈 때문에 미쳐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나만 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안도감 역시 느꼈다. 괜히 상을 많이 탄 영화가 아니다. 앵커맨2: 전설은 계속된다 (2013) 내가 그간 홍상수의 몇몇 ..
매직 인 더 문라이트 (2014) 키잡(키워서 잡아먹는) 마스터 우디 앨런의 시대착오적 사랑 이야기. 아마도 그 자신 역시 이 이야기가 시대착오적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시대적 배경을 한참 전으로 설정했을 것이다. 게다가 흡입력도 없다. 어떤 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아름답다며 칭송하더라.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이해한다. 자기 인생에 가능성이 열려있던 시기에 경험한 대다수의 컨텐츠들은 그 컨텐츠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니까. 아마 어떤 사람들에게는 우리 앨런이 그런 의미겠지. 이해는 하지만, 그건 다분히 주관적이다. 좋은 친구들 (1990) 얼마 전에 쿠엔틴 타란티노 관련 기사를 보다가 누군가가 타란티노는 남의 연출을 베낀 것으로 점철되어 있는 영화라는 글을 남긴 것을 보았는데, 내 생각에..
셔터 아일랜드 (2010)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데,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지는 몰라도 이 이 이야기와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다. 재미는 비등하다. 물론 - 마틴 스콜세지이기 때문에 - 약간의 코미디를 비롯한 오락적인 요소는 가 덜하다. 반전을 굉장히 신줏단지 모시듯 끌고 가는데, 의외로 실체가 빨리 드러나서 반전에 대한 긴장감은 크지 않다. 그러나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해서 충격이 덜한 것은 아니다. 마틴 스콜세지가 이 영화의 감독을 맡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이야기의 분위기가 마틴 스콜세지의 스타일과 너무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뭐, 데이빗 핀처도 괜찮았을 수도 있고. 골드 (2016) 실화를 기초로 하고 있다는 말이 영화 앞에 나오면 한숨부터 쉬게 되는데 왜냐면 대개 재미도 없는 쌉소리를 ..
'블룸하우스가 선사하는 액션의 신세계'라니! 우리 모두 알고 있다시피, 영화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은 카피로 쓸 수 있는 건 다 끌어다 쓴다. 많이 쓰이는 카피들 중에는,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 있다. '유명한 모 영화'의 제작진 누구누구, '모 영화', '모 영화'의 배우 누구누구 혹은 감독 누구누구, '모 영화'와 '모 영화'를 만들어낸 제작사. 아마 모 영화의 사돈의 팔촌까지 꺼내지 못하는 걸 애석해할 사람도 있을 테지. 그리고 대개 자신의 연줄을 자랑하는 사람일수록 정작 본인이 가진 건 별로 없다. 감독 리 워넬(Leigh Whannell)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스릴러, 공포, 미스터리 영화들로 꽉꽉 차있다. 가히 '서스펜스의 장인'이라 불러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의 서스펜스는 크게 나쁘지..
조태석의 영화 뒷북치기 두 번째. 올바른 덕질이란 무엇인가? 덕질이란 무엇일까. 대리만족? 존경과 사랑? 수많은 답들이 있을 수 있지만 길(Robert De Niro 扮)의 덕질이 잘못된 덕질이라는 건 확실하다. 칼을 세일즈 하는 변변찮은 영업사원 길은 이혼남이며 아들의 양육권마저 빼앗겼다. 그가 온 마음을 바쳐 좋아하는 것은 야구다. 그 안에 인생에 대한 모든 메타포가 존재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특별히 애정 하는 선수 바비 레이번(Wesley Snipes 扮)이 자신의 홈 팀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해온다는 소식을 들은 길은 환호한다. 그러나 이적 후 바비의 성적은 예전만 못하다. 바비는 등번호 11번을 행운의 숫자라고 생각하는데 자이언츠에는 이미 11번 선수 후안 프리모(Benicio Del T..
간만에 정말 물건이라고 할만한 영화가 등장했다. 때까지만 해도 그저 새로운 감독의 새로운 화법에 많은 이들이 매력을 느낀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진짜 실력이었고, 에서 그것을 아주 제대로 보여준다. 그러니 를 조금 더 맛있게 먹고 싶다면 를 먼저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콜린 파렐을 다루는 법'을 예습한다 해도 나쁠 것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그가 콜린 파렐을 페르소나로 점찍은 게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이 매우 반갑다. 영화는 중년 남성과 10대 -로 추정되는- 소년의 대화로 시작하는데, 우리는 여기에서부터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뭐야, 둘이 잤어?" 라는 의문이 들어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는 콜린 파렐과 배리 케오간에게서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