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디어 (2018)

반응형
반응형

킬링 디어 (2018)

 

 간만에 정말 물건이라고 할만한 영화가 등장했다. <더 랍스터>때까지만 해도 그저 새로운 감독의 새로운 화법에 많은 이들이 매력을 느낀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진짜 실력이었고, <킬링 디어>에서 그것을 아주 제대로 보여준다. 그러니 <킬링 디어>를 조금 더 맛있게 먹고 싶다면 <더 랍스터>를 먼저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콜린 파렐을 다루는 법'을 예습한다 해도 나쁠 것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그가 콜린 파렐을 페르소나로 점찍은 게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이 매우 반갑다.

 

 

 영화는 중년 남성과 10대 -로 추정되는- 소년의 대화로 시작하는데, 우리는 여기에서부터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뭐야, 둘이 잤어?" 라는 의문이 들어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는 콜린 파렐과 배리 케오간에게서 내내 흐르는 성적 긴장감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만남이 반복되다보면 우리는 아, 저 남자는 의사이고 소년의 아버지를 수술하다 사망에 이르게 했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콜린 파렐에게 죄책감이 작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되지만 사실 그 죄책감은 구체적이지 않다. 그는 수술 당일 자신이 음주 상태였고 그로 인하여 실수를 저질러 소년의 아버지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그저 불운이라고 결론 내린다.

 

 

 소년은 점점 남자의 내부로 파고든다. 그의 가족과 함께 시간을 갖곤 하는데, 그의 딸은 급기야 소년에게 호감까지 느끼게 된다. 소년 또한 혼자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자신의 집으로 남자를 초대한다. 그때 소년이 남자에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며 끝까지 볼 것을 종용하는 영화는 하필이면 <사랑의 블랙홀>이고, 그것은 분명 우연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리고 소년의 흑마술(이라고 분명 나는 생각한다)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남자와 그의 가족은 점점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된다.

 

 <더 랍스터>도 그랬지만 이 영화 역시 아동학대적이다. 물론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만 그 불편함이 이 영화에선 거의 정점에 이른다. 그러나 아동학대적인 부분은 단순하게 소비되는 것이 아닌, 관객을 괴로움에 시달리도록 하는 것에 이용된다.

 

 

 그리고 이토록 뒤끝 없는 복수극도 처음이지 싶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화내지도 않는다. 다만 차분한 어조로 남자와 가족을 계속해서 회유할 뿐이다. 사실 처음 이 영화의 제목을 보면 무슨 제목을 이렇게 거창하게 지어놨나, 싶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보다 더 잘 지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무 죄도 없는 자가 희생되면 남은 이들은 평생 동안 죄책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엄청난 신예의 등장을 예감하게 되는데, 바로 배리 케오간이다. <덩케르크>에서 그가 원하던 대로 역사의 한 부분이 되기는 되었는데, 좀 억울한 방식으로 꿈을 이룬 그 소년이 맞다. 배리 케오간의 연기는 가히 미쳤다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다.

 

 

 그 컷을 가장 극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앵글, 섬찟한 앰비언스들, 어떤 광기마저 느껴지는 배우들의 연기, 정말 이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다. <더 랍스터>에서도 보여준 블랙코미디의 솜씨는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빛을 발한다. 어쩌면 가장 긴장감이 넘친다고도 할 수 있는, 그 가족들만의 우스꽝스러운 러시안룰렛 장면을 본다면 웃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아마도 이런 장르로는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앞으로도 거의 독보적일 듯하다.

 

이 부조리한 영화는 당신의 뇌리에, 그것도 엄청나게 오랫동안, 잔상을 남기게 될 것이다.

 

Copyright ⓒ 조태석


ⓒ 조태석

반응형

'황색문화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업그레이드 (2018)  (2) 2018.08.28
더 팬 (1996)  (2) 2018.07.06
서버비콘 (2017)  (0) 2018.02.24
블레이드 러너 2049 (2017)  (0) 2017.10.25
덩케르크 (2017)  (0) 2017.07.20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