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도서는 이슬람교와 무슬림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고 인식이 부재해 오해하기 쉽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들 대신 나서서 적극적으로 변호해 주는 이슬람과 무슬림을 사랑하는 가톨릭 교도 역사학자가 쓴 이슬람교와 무슬림 소개서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갖기쉬운 편견과 오해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우리의 허상에서 정 반대의 대척점에 서있는 무슬림들의 사례를 이야기하고, 잘못되고 (의도적으로) 왜곡된 이미지들의 실체를 마치 혼나는 아이를 변호하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열심히 나서서 대변하는 느낌이 든다. 각 챕터마다 혹시 이 분 스스로가 이슬람 문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편향된 변호를 하진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끝까지 긴장된 마음으로 글을 읽어나갔다. 일부분은 마음이 앞서 조금은 부적절한 예시가 아닐까 싶은 부분도 있었지..
읽는 내내 가슴이 쓰리다. 그래서 자꾸만 나아가지 못하고 책장을 덮었다. 이렇게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성실했던 사람을 대통령으로 가졌던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그 업적을 인정해주지 않고 비난을 거듭한다. 다시 생각해 보니 기적이다. 그 누가 이토록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모든 분야에서 깊게 해 왔을 수가 있을까. 우린 우리 수준에 넘치는 대통령을 가졌었다. 늘 책을 가까이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는 사람이라야 겨우 다다를 수 있는 곳이겠다. 그래서 그를 다 이해하지 못하고, 온전히 믿어주지도 못했다. 그래서 우린 교과서와 사시공부 이외에는 책 따윈 거들떠도 안보는 것 같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가지게 되었다. 남북, 남북미의 평화를 위한 노력들과 그 순간마다 발목을 잡던 일본의 방해. 일본 정부의..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우리 종(호모 사피엔스)은 다른 종들과의 경쟁에서 거짓말의 힘으로 승리했다고 한다. 민족, 국가, 종교 등 실체가 없는 것들을 이야기로 만들어서 믿게 만드는 능력이 보다 큰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왔고, 그 공동체의 힘으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살아남았다)고 이야기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 에서 우연히 유럽인들이 살았던 지정학적 위치가 보다 타 지역들보다 유리한 환경으로 기술과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발달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그로 인한 차이들이 누적되어 전 세계를 자신들이 지배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조지프 헨릭은 이 책에서 우리 종의 성공과 발전이 집단두뇌의 크기를 키워 많은 문화적 전달목록들을 만들었으며, 이 문화적 전달목록들이 인류에게 ..
낯익은 플롯이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정작 그를 잘 몰랐던 딸이 그 아버지의 장례식을 계기로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며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을 알아간다. 더 낯익은 내용이다. 그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 아버지와 얽혀있는 사람들의 행태가. 내가 어제도 오늘도 보고 겪어온 바로 곁의 한 사람 두 사람의 그것이라 너무나도 낯이 익다. 그래서 징글징글하다. 그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생겨난 결과인지 너무나도 잘 알겠어서 소름이 끼친다. 이것이 한국 문학이다. 내가 나고 살아가는 곳에 함께 얽혀있는 흙먼지 처럼 뒤엉켜 있고 눌어붙어 떼어내려 해도 잘 떨어지지 않는 생채기 같다. 이곳에 진짜 한국말이 살아있다. 세월과 한을 ..
적자생존 Survival of the fittest. 이 단어는 다윈의 ‘종의 기원’ 초판에는 없었던 말이라고 한다. 다윈이 선택한 Natural Selection이라는 용어가 자연이라는 배경을 무언가를 선택 가능한 주체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어 동료 과학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차용한 용어이다. 이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는 ‘이기적 유전자’처럼 진화와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켜 마치 진화는 곧 진보이며, 진화하지 못한 개체는 보다 열등하고 미천하여 멸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이미지로 소비되었고, 우생학이라는 괴물까지 만들어 인간들로 하여금 수많은 다른 동식물은 물론 같은 인간마저 등급을 나누고 살해하거나 아이를 낳을 수 없도록 만들기까지 하는 끔찍한 결과를 자아냈다. 이 책에선 개와 여우의 ..
슬램덩크가 한국에서 연재되던 시절은 1992년부터였다. 1991년 2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소년 점프의 연재작이었던 슬램덩크는 1992년 국내 신생잡지인 대원(현 대원씨아이)의 소년 챔프에 몇 페이지씩 잘라서 연재되기 시작했다. 1991년 막 창간했던 소년챔프는 경쟁사인 서울문화사(현 서울미디어코믹스)의 아이큐점프와 국내 첫 정식 계약해 가져온 작품인 드래곤볼에 꽤나 고전하고 있던 터라 편집부에서 전략적으로 같은 잡지 소년 점프의 연재작이었던 슬램덩크와 판권 계약을 한 것이다. 1989년 창간된 국내 만화잡지 아이큐점프의 간판작품이던 드래곤볼은 매 호 10만 부 정도가 팔렸던 아이큐 점프의 판매량을 5배 이상으로 끌어올린 초 히트작으로 그전까지 해적판으로 소개되던 것을 국내 최초로 일본 만화와 정식 판권계..
'작가가 독자를 기만한 작품'이라고 하면 어떤 작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순히 어느 정도 진행하다가 연재를 아예 놓은 작품? 연재는 하고 있지만 사실상 끝날 기미가 없는 작품 혹은 끝내지도 못한 채 가장 재미있는 포인트에서 작가가 급서한 작품? 여러 작품이 많겠지만 현시대 가장 실망스러운 작품을 딱 하나만 적자면 다중인격탐정 사이코(多重人格探偵サイコ)를 꼽고 싶습니다. 나나? 일단 작가분은 살아있잖아요. 파이브 스타 스토리? 그래도 나가노 마모루는 돈 떨어지면 열심히 그릴 겁니다. 구인 사가? 원작가 구리모토 카오루는 서거하기 전까지 작품에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최소한 사이코와 비교될 정도의 작품은 아닙니다. 이제는 초반의 센세이션도 끝나버리고 추할 대로 추하게 끝나버린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이제는 너무 오래된 ‘주유소 습격사건’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에서 단순무식한 불량배 '무대포' 역할로 나온 유오성 씨가 유행시킨 대사가 있다. "난 한놈만 패."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대사가 '난 한놈만 패' 였다. 그렉 이건(Greg Egan)의 '쿼런틴(Quarantine)'은 어느 날 갑자기 태양계에 벌어진 '격리' 현상이 불러온 파장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 인류가 스스로의 뇌 속의 감정과 사고들을 자유자재로 조절하고 그 효과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된 미래사회에서 벌어진 미스터리 한 사건을 다룬 SF소설이다. 원래는 1992년에 출판된 오래된 소설이었으며 국내에서는 SF 번역 출간으로 유명한 행복한책읽기에서 정발 되었다. 그 이후 장기간 절판 되어 있다가 2022년 12..
한때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참 좋아했다. 그의 문체인지 그의 작품을 번역한 번역가의 문체인지도 모른 체. 덕분에 다른 일본작가들의 소설들도 읽고, 문체가 비슷하다던 신경숙의 작품까지도 읽었다. 일본어를 공부하고 그의 작품들을 일본어로도 읽었다. 1Q84가 나올 무렵 까지는 출간한 거의 모든 작품을 읽은 것 같다. 단편선과 그것들의 모음집은 물론 에세이와 하다못해 기행문과 재즈에 관한 이야기까지. 그러다 딱 1Q84가 나온 시점에 그 책을 읽는 도중에 지루해졌고 더 이상 그의 글에 흥미가 없어졌다. 최근에 여러 가지 책을 읽는 페이스가 좀 빨라지면서 독서에 대한 흥미가 다시 붙음과 동시에 약간의 피로감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과학책과 역사책을 양 축으로 하고 중간중간 머리를 식힐 겸 소설을 끼워 넣었다. 주로..
이슬람과 그 주변 국가들의 역사를 처음 접한 것은 아니다. (도중에 멈췄지만) 비잔티움의 역사와 터키의 역사 아랍의 역사를 각각 다룬 여러 권의 책을 읽었지만 직접 다가오고 느껴지지는 못했던 여러 가지 사건들과 사실들이 종합적으로 그 공간에 선 한 개인의 입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느껴졌을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해 준 멋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각자 여러 가지 욕망이 존재한다. 스스로의 모습을 멋지게 꾸미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개인적인 욕망과 함께 내가 속한 사회 및 공동체에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싶은 욕망도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생각은 이슬람의 세계는 자신을 공동체와 그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더 중요시하며 서구사회는 개인의 욕구와 성취를 더 우선시한다는 ..
최근의 유라시아지역 역사서를 읽다 보면 기존의 중국왕조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지금껏 농경문명에 비해 조명받지 못하고 변두리의 이벤트로 취급되던 유목문명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려 노력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기존에 읽은 르네 그루쎄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나 스기야마 마사아키의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에서는 두 세력을 서로 대립항으로 두고 서로 각축을 별여 온 이야기가 유라시아 문명사라는 입장을 취한다. -부분적으로는 수, 당 제국도 유목문명으로 규정하여(+진 시황제의 출생까지도) ‘중국왕조 그거 대부분 다 유목문명이 만든 거야 유목 짱짱맨!’ 같은 느낌까지 자아내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읽은 김기협의 오랑캐의 역사는 농경문명을 중심으로 하되, 유목문명은 그 ..
난 그동안 젠더의 차이는 생식과 성생활을 위한 신체적인 구조적 차이 이외에는 모두 사회화로 인한 후천적 학습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모든 차이를 부정하려는 과격하고 틀린 생각이었으며, 내가 아는 것보다 생물학적 선천적인 차이는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어디까지나 역할에 따른 진화적 누적으로 인한 방향성의 다름이지 우열을 논할 수 있고 상하를 가를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는 것을 여러 영장류들의 사례를 예시로 들어 설명해주고 있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국경이 있다"라는 파스퇴르의 말은 유명한 만큼 잘못된 방향으로 인용도 많이 되고 있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에는 성별이 없지만 일부 과학자들에겐 지키고 싶은 우월한 성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