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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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an (1996)

 

 조태석의 영화 뒷북치기 두 번째. 올바른 덕질이란 무엇인가? <The Fan>

 

덕질이란 무엇일까. 대리만족? 존경과 사랑? 수많은 답들이 있을 수 있지만 길(Robert De Niro 扮)의 덕질이 잘못된 덕질이라는 건 확실하다. 칼을 세일즈 하는 변변찮은 영업사원 길은 이혼남이며 아들의 양육권마저 빼앗겼다. 그가 온 마음을 바쳐 좋아하는 것은 야구다. 그 안에 인생에 대한 모든 메타포가 존재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특별히 애정 하는 선수 바비 레이번(Wesley Snipes 扮)이 자신의 홈 팀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해온다는 소식을 들은 길은 환호한다. 그러나 이적 후 바비의 성적은 예전만 못하다. 바비는 등번호 11번을 행운의 숫자라고 생각하는데 자이언츠에는 이미 11번 선수 후안 프리모(Benicio Del Toro 扮)가 있기 때문이다. 길 리나드의 덕질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건 거기서부터다.

 

편집장 주 : 실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11번은 이미 1944년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11번의 주인공은 '칼 대제(大帝)'라고도 불리운 칼 허벨(Carl Hubbell)로 1930년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전신인 뉴욕 자이언츠를 중흥기로 이끈 대투수다. 통산 235승을 거두는 뛰어난 피칭을 선보였으나, 그의 최고 변화구였던 스크류볼의 대가로 팔이 뒤틀리는 후유증을 앓기도 했다.

 

 

 

 덕질 대상(최애)은 가수, 배우, 작가, 감독, 운동선수, 만화 등등 다양하다. 라이트한 덕질은 삶의 활력소가 되지만, Deep 하게 들어가면 바로 거기서부터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즐기고 싶어서 시작한 덕질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욕심'이다. 내가 그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저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어선 안돼, 하는 건 이미 보통의 덕질을 약간 넘어선 것이다. 마치 길 리나드가 후안 프리모를 죽여 없애버려서 바비 레이번에게 11번 등번호가 돌아가도록 만든 것처럼 말이다.

 

 덕질이 내 인생을 방해하면 조금은 고민을 해봐야 할 일인데, 어떤 덕후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생이 덕질에 방해가 된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길 리나드는 법적으로 허용된 아들과 있을 수 있는 시간 동안 자이언츠의 경기를 함께 보러 가지만 하필 그 시간에 고객과 약속이 잡힌 길 리나드는 그 두 가지를 어떻게든 모두 해내려고 한다. 곧 돌아온다며 아들을 그 큰 야구 경기장에 홀로 두고 자신은 차를 타고 나가 고객과의 약속 장소로 가지만 이미 늦게 도착한 터라 고객은 가고 없다. 경기장으로 돌아오니 아들이 없다. 아들과 경기를 보며 다른 관중에게 난폭하게 굴고 선수를 향해 욕을 하는 길 리나드를 지켜보던 한 노부부는 그가 자리를 오래 비우자 불안한 마음에 아이를 자기 엄마에게로 데려다준 것이다. 그리고 길 리나드는 아들에게 접근금지명령을 받게 된다.

 

 

최애가 행복하면 나 자신도 행복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최애와 나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시작한 덕질이 아니던가. 바비 레이번이 승승장구하지만, 길 리나드의 인생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판매 실적이 저조해 회사에서도 해고당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비 레이번에게 올인하고 급기야 그를 스토킹하기에 이른다. 그러다 우연히 바다에 빠진 바비의 아들을 구해주고 바비와 친구가 된다.

 

 최애에게 나는 그저 플랑크톤에 불과하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셀러브리티가 팬들에게 애정을 느끼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팬 서비스를 하는 건 자의에 의한 것이지, 그의 의무는 아니다. 길 리나드는 바비 앞에서 자신이 머글(덕후가 아닌 사람을 뜻하는 말)인 척한다. 그러자 바비는 솔직한 자기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야구 광팬들을 조롱하고, 무시하는 발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저 후안 프리모를 죽여줘서 고맙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엄청나게 삐뚤어진 욕망이다) 길 리나드는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으로 바비의 아들을 납치해 인질극을 벌인다.

 

 

뭐, 각설하고 이러저러해서 그는 결국 그렇게 사랑해 마지 않던 그라운드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야구팬 다운 죽음이라고 해야 할까. 어차피 길 리나드는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막다른 골목을 향해서 제 발로 달려갔으니 말이다. 야구에 인생을 내맡긴 그에게 썩 어울리는 죽음이라고 생각된다.

 

 덕질, 그것참 조절하기가 어렵다. 이미 그에 빠진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쉽지가 않다. 이런 와중에도 다양한 플랫폼들은 나 자신이 더욱더 최애에게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유통업체가 다 챙겨 먹는 꼴이다.

 

 

 덕후의 자격이란 건 없다. 진짜 덕후와 가짜 덕후도 없다. 내가 너보다 먼저 덕질했으니 너보다 내가 더 진짜 덕후다라는 법도 없다. 내가 너보다 돈과 시간을 더 많이 썼으니 넌 가짜고 난 진짜고, 그런 거 없다. 그저 우리는 모두가 같은 최애를 사랑하는 덕후들일 뿐이다. 부디 욕심과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나를 포함한 모든 덕후들에게 소망한다.

 

 내 친구에게서 들은 조언을 끝으로 글을 마친다.

 

"최애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 너한테 최애가 특별하면 그걸로 된 거야."

 

Copyright ⓒ 조태석


ⓒ 조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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