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녀석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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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녀석들뜨거운 녀석들 (2007)

 

 요즘의 내게는 이른바 슬럼프라고 할만한 것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슬럼프는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이기도 하지만, 영화라는 산업과 그것의 문화적인 측면에 대해 점점 실망하게 되었다는게 정확하다. 그렇지 않은가? 굳이 다른 예를 들지 않아도 엄청나게 장사가 잘 되는 현재의 이 미친 히어로 프랜차이즈라면 설명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영화를 구매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순수하다. 삶에 지친 그들은 실제로는 있을 수도 없는 - 비대한 악의를 가진 - 안타고니스트를 신나게 물리치는 영웅들의 위대한 자기희생에 감동하고 즐거워하며 상영시간 동안만이라도 그들 자신의 삶을 위로한다. 그리고 이런 그들을 아무도 탓할 수는 없다. 언제나 그렇듯 공급이 문제라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런 문제라면 책 한 권을 쓸 수도 있다. 히어로 영화를 위시한, 스케일 큰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들이 군대와 전쟁을 미화하고, 폭력 및 총기 소지를 정당화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나 아무도 그런 문제에 관심이 없을 테니 넘어가겠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를 위로하던 영화들 중에는 액션 영화, 그중에서도 버디 무비 장르가 있었다. 영화 꽤나 한다는 사람들이 장르 영화를 경시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장르 영화들이 장르적인 재미만 추구하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메세지가 쏙 빠져있다는 이유일 것이다. 메세지라는 말이 사뭇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는 있겠지만, 이건 중요한 문제다. 그것이 없고서야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 포르노로만 존재할 뿐이다.

 

 헐리우드 액션 영화들이 설정하는 안타고니스트의 국적은 다양하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 고상한척하지만 분노조절에 문제가 있는 영국인, 애국 말고는 아무 감정이 없는 데다 말수도 별로 없는 러시아인, 언제든 미국인들을 해할 준비가 되어있는 중동인, 그리고 범우주적인 마인드로 타 행성인까지 끌어다 쓴다. (와중에 아시안이 별로 없는 건 우리가 그들에겐 위협조차 되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시점에서 <뜨거운 녀석들>이라는 2007년산 영화를 한 번 소개해보려 한다. <앤트맨> 과 <베이비 드라이버> 를 연출한, 영화 재미나게 만들 줄 아는 에드가 라이트가 감독했으며 기획, 제작, 각본, 연기 등 못하는 것이 별로 없는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 주연의 버디 무비이다.

 

 사이먼 페그가 연기하는 니콜라스 엔젤이라는 캐릭터는 대도시 런던에서 그야말로 혁혁한 공을 세우는 엘리트 출신 경찰이지만, 일에 대한 과도한 열정 때문에 시골 마을로 좌천된다. 그리고 예상 가능하듯 그곳은 한 톨의 - 공식적인 - 범죄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곳은 도시의 범죄와 그 동기가 다를 뿐 악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지역이었는데.

 

 

 집중해야 할 포인트가 많지만, 먼저 이 영화의 주인공인 니콜라스 엔젤과 대니 버터맨의 관계부터 살펴보자. 대니 버터맨은 경찰서장인 아버지 프랭크 버터맨과 더불어 샌드포드의 토박이다. 아마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든, 혹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던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경찰이 됐을게 분명한데 가슴속에는 범인 검거, 총격전 등 이른바 '멋진 경찰'이 되는 것에 열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조용한 일과를 마치고 맥주를 마신 후 집에 돌아가 <나쁜 녀석들>, <폭풍 속으로>를 보는 것으로 소일하는 등 영화로 대리만족을 할 뿐이다. 자기 자신을 증명해 보일 기회가 단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던 대니는 아버지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했고 따라서 아버지의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 그러나 니콜라스 엔젤이 나타나고 함께 사건을 파헤치면서 그의 이런 점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또 한 명의 주인공, 니콜라스 엔젤은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아내와도 이혼했으며 이런 그가 돌보는 생물이라고는 스파티필름(Spathiphyllum)이 유일하다.

 

 

 그러나 샌드포드로 좌천된 후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순진하고 붙임성 좋은 대니와 자주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 혹은 위로하기 위해 혹은 지켜주기 위해 애쓰면서 그의 가슴속에서도 서서히 우정이라고 할만한 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이들의 이런 관계성이 자칫 장르물로 전락할 수 있는 이 영화에 아주 풍부한 감수성을 주입한다.

 

 두 번째로 우리의 관심을 끄는 포인트는 바로 집단의 폐쇄성이 불리얼으키는 변질된 상황윤리이다. 그렇지만 일찍이 우리는 이런 문제를 다루는 많은 영화들을 보았으며 이 영화 또한 전작들이 제창하고자 하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영화들에서는 불가피하게 폭력이 발생하는데, 보통 다른 많은 영화에서는 젊은이들, 잘해야 중년까지가 총이나 칼을 들곤 하지만 이 영화의 색다른 점은 그 폭력의 주체가 바로 노인들이라는 점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모두가 거친 총격 액션을 선보인다. 덕분에 아주 멋들어진 후반부가 우리를 기다린다. 그리고 물론 후반부를 보기 위해 지루한 시간을 견딜 필요도 없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고어적인 면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면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싶다. 피투성이가 되어 잘린 목이 대낮의 도로 위에 전시되는 등의 장면이 더러 있지만 이 영화의 존재 이유는 거기에 있지만은 않다. 그다지 사실적으로, 잔인하게 묘사되지 않고 어느 정도 현실감 없이 다뤄지므로 큰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흔히 '팝콘 무비', 또는 '맥주 한잔하면서 보는 영화'라는 워딩에는 폄하의 의미가 들어있는 경우가 왕왕 있고 누군가 내게 <뜨거운 녀석들>이 어떤 영화냐고 묻는다면 팝콘 먹으면서, 혹은 맥주 마시면서 보기 좋은 영화라고 말하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즐기는 팝콘이나 맥주의 맛은 여태까지의 그저 그런 영화들과 함께한 맛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이 영화는 틀림없이 당신의 주말 저녁을, 혹은 혼술의 영역을 빛내줄 것이다.

 

 

Copyright ⓒ 조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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