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사화의 늪에서 길을 잃다.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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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6 - [황색문화/영화] - 실사화의 늪에서 길을 잃다. 上

 

투자와 벽

 

 이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야기로 '어느 가족'을 제작하면서 고레에다 감독은 후지TV의 지원과 투자를 받아서 힘겹게 영화를 촬영했다. 이제 일본에서 더이상 거대 영화사들은 오리지널 각본에 투자해주지 않으며 그나마 작품성을 보고 오리지널 각본에 한정된 예산을 어느 정도 지원해 영화를 제작해 주는 곳이 대형 민영방송사이자 최근 현 일본 정권과 은근히 성향적으로 대립중인 후지TV밖에 남지 않았고 그나마도 시나리오가 너무 많아서 승인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소노시온소노 시온 감독 (사진=위키백과)

 

 오죽하면 칸 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명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역시도 2019년 개봉예정인 신작은 아예 프랑스에서 프랑스 자본으로 카르틴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를 동원해 촬영중이며 해외에서 호평을 받는 감독인 소노 시온(園子温)은 아예 일본 영화와 문화가 재미없고 지루한 이유는 젊은이들이 나라에서 저항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발언을 날리고 미국으로 이주해 라라랜드로 유명한 영화사인 미국의 라이언스게이트와 계약했다. 일본의 현세대 감독이라고 할만한 구로사와 기요시(黒沢清), 가와세 나오미(河瀬直美), 후카다 코지(深田晃司)같은 감독들 역시 프랑스 자본으로 영화를 촬영하고 있고 유레카로 유명한 아오야마 신지는 작품활동을 접은 지 5년이 다 되어간다.

 

미이케타카시평범한 상업 영화감독으로 취급받는 미이케 타카시 감독 (사진=디포시트포토)

 

 그나마 일본에서 활발하게 필모그래피를 채워간다고 할만한 감독은 미이케 타카시(三池崇史) 정도지만 오디션이나 고로시야 이치, 표류도시로 이름을 알리고 예전 베니스 영화제나 칸 영화제에도 초청받던 시대가 지나 크로우즈, 얏타맨, 역전재판 등의 실사화를 맡아 혹평만 받으며 평범한 일본 상업 영화감독으로 취급받고 있으며 춤추는 대수사선이라는 인기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모토히로 카츠유키(本広克行)는 TV애니메이션 사이코패스 시리즈나 신판 프리크리 등의 감독을 맡으며 최근에는 거의 애니메이션 감독과 연출이 더 많아져버렸다.

 

역전재판혹평을 받은 역전재판 실사화 (사진=에펨코리아)

 

각본과 판권의 벽

 

 일본은 방송국들이 영화 투자나 제작에 적극적인 편이지만 방송국들 모두 거대 영화사들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메이저 영화사이자 배급사인 토호와 쇼치쿠는 후지TV의 지분을 상당수 차지하고 있고 아사히TV의 경우엔 아사히 신문에서 만든 회사지만 역시 아사히 신문이 소유한 영화사인 토에이의 지분이 상당하다. 방송국과 영화사의 관계가 돈독한지라 어느정도 시청률이나 인지도가 검증되었다고 할만한 각 방송국에서 방영한 콘텐츠를 위주로 한 실사영화나 드라마의 극장판,TV스페셜 제작이 좀 더 우선적인 경우가 매우 잦다. 어떻게든 돈이 되는 실사화에 매달리기엔 충분한 이유이며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있는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두번째는 '원작 사용료'. 흔히 말하는 판권료가 높지 않다. 2012년 인기 배우인 아베 히로시(阿部寛) 주연으로 화제를 모으며 개봉한 만화 원작 영화인 '테르마이 로마이'는 흥행수익 58억엔의 대박을 쳤지만 원작 작가에게 돌아간 사용료는 100만엔에 불과했고 명작 의료만화 '헬로우 블랙잭'으로 국내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작가인 사토 슈호 원작의 '해원(海猿:우미자루)' 역시 700억원이 넘는 흥행수익을 거뒀지만 원작자 사토 슈호가 받은 사용료는 270만엔 정도였다. 일례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역시도 일본 후타바샤에 판권료로 지불한 금액은 2만달러였지만 국내에선 300만 관객이 넘을 만큼 흥행에 성공했고, 일본으로 영화가 역수출되면서 일본에서 받은 금액은 220만 달러로 100배가 넘는 수익을 거뒀다. 헐리우드 리메이크 명목으로 받은 수익이 300만 달러가 넘었다는 건 덤이다.

 

테르마이로마이목욕덕후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 원작 '테르마이 로마이'는 대박을 쳤지만 원작 작가에게 돌아간 사용료는 100만엔에 불과했다. (사진=구글이미지)

 

 제작사의 입장에서야 물론 실사화가 최소의 투자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하나의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지만 원작자에게 주어지는 금액은 거저주는 것에 가까운 이런 황당한 시스템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달라진 게 없다. 게다가 판권료가 저렴한 만큼 예산 역시도 영화치고 상대적으로 저예산이라 '잘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제작이 많다. 현재 일본만화를 실사화한 작품 중에 가장 큰 제작비가 든 작품은 총제작비 60억엔이 소요된 영화판 20세기 소년 3부작으로 흥행은 110억엔이 넘어갈만큼 흥했지만 영화는 상당한 혹평을 받았다.

 

 그나마 돈을 많이 들여 흥행에 성공했다고 할만한 작품은 바람의 검심 영화판(제작비 30억엔), 데스노트 영화판(제작비 20억엔) 정도이며 최근에 총제작비 30억엔의 실사판 진격의 거인은 1, 2편 모두 처참한 혹평과 함께 실패했다. 그 외에 흥행수익 7억엔으로 침몰한 테라포마스(제작비 10억엔), 총 수익 12억엔에 그친 강철의 연금술사(제작비 9억엔) 등이 줄줄이 실패하며 고배를 맛보았다. 대부분 '대박'이라고 할만한 목표흥행수입이 제작비의 3배라고 가정했을 때 본전조차 못 찾은 실사화의 사례들이 넘쳐나는 상황이라 아마 총비용의 절반을 겨우 넘기는 참패를 겪은 2018년 블리치 영화판 이후로 더 이상의 실사화는 제동이 걸릴 확률이 높다.

 

강철의연금술사실패로 돌아간 강철의 연금술사 극장판 (사진=구글이미지)

 

알리타 : 배틀 엔젤이 보여주는 것들

 

알리타각국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한 알리타:배틀 엔젤 (사진=구글이미지)

 

 최근 국내에 개봉한 제임스 카메론 제작, 로버트 로드리게즈 연출의 '알리타: 배틀 엔젤' 역시도 일본의 SF만화가 키시로 유키토(木城ゆきと)의 대표작인 총몽(銃夢)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고 1억 7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미국은 물론이고 한중일 각국의 박스오피스의 정상에 올랐다. 워낙에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영화라 잘해봤자 겨우 손익분기점이나 도달할 거라는 평이 다수였지만 액션과 영화적인 재미로는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다. 같은 재료를 쓰고도 결과물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총몽알리타의 원작 만화 총몽 (사진=다음1분)

 

 단순히 시간과 예산을 들먹이기에는 싱크로율만 높은 의도적인 원작훼손이라는 악평을 듣고 흥행에 참패한 2017년의 공각기동대 실사판이 있었다. 작품의 설정이나 스케일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실사화는 배역을 맡는 해당 배우들에게도 고역이고 그걸 봐야하는 원작의 팬들에게도 역시 못할 짓이다. 그리고 비단 일본의 오리지널 각본 배제의 상황이나 실사화의 문제, 현역 감독들이 자국 영화사의 투자를 받는 데 실패하거나 자포자기해 해외로 떠나버리는 상황은 우리나라의 미디어계에도 언젠가 찾아올 수도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신과 함께 시리즈에서 만족할만한 실사화를 보여주었으며 일본과는 실사화의 방향이 다르지만 인랑, 치즈인더트랩, 내일도 칸타빌레라는 실패사례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어느 원작이건 이것이 실사화나 리메이크를 했을 때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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