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사화의 늪에서 길을 잃다.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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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혼, 강철의 연금술사, 진격의 거인.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일본에서도 매우 유명할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만화이며 두 번째는 실사판 영화가 제작되었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오시이 마모루(押井守) 원작의 애니메이션으로 잘 알려진 인랑과 웹툰으로 잘 알려진 신과 함께의 실사화가 있었다. 이 결과들은 다르게 나타났는데, 똑같이 상당한 제작비를 들이고도 희비가 갈렸다.

 

인랑많은 화제를 모았으나, 결국 흥행에 실패한 영화 인랑 (사진=다음)

 

강철의 연금술사, 죠죠의 기묘한 모험, 진격의 거인이라는 굵직굵직한 만화 원작을 가진 작품들은 모두 흥행에서 처참하게 실패했고 우리나라 역시 여러가지 의혹과 함께 영화판 인랑은 흥행실패를 맛보았다. 제대로 흥행했다고 할만한 성과를 올린 작품은 오구리 슌(小栗旬)과 하시모토 칸나(橋本環奈)를 필두로 한 일본 은혼의 두 번째 영화판과 1,2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국내 최대관객 기록을 새롭게 쓴 신과 함께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흥행실패와 부침을 겪고도 일본은 꾸준히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원작으로 실사화한 영화를 만들어왔고 또 만들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도 마찬가지다. 요새 부쩍 해외 영화, 드라마의 리메이크나 웹툰 원작의 영화나 드라마가 늘어났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각본품귀현상이라고 부를 만큼 오리지널 각본보다 기존 작품의 재창조나 재구성이 늘어만 가는 추세에 애니메이션, 만화강국이자 소프트파워의 본고장이라고 부를만한 막강한 문화대국인 일본이 유독 실사화에 고전하고 오리지널 각본이 줄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은혼오구리 슌과 하시모토 칸나를 앞세운 은혼은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사진=구글이미지)

 

자본의 벽

 

2018년 칸 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과도 경쟁해나가며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탄 걸작 '만비키가족[각주:1](万引き家族)'의 감독이자 국내에도 팬이 많은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는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영화감독은 먹고 살 수 없는 직업'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진=구글이미지)

 

일본에서는 영화 수업의 50%를 극장이, 40%는 제작위원회(투자자), 10%는 배급사가 가져가는 구조라 대부분의 경우에는 감독과 배우, 스텝에게 수입이 돌아가지 않으며 이 때문에 신인감독이 나오기 매우 힘들구조고 데뷔를 하더라도 제작비 지원따위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저예산 영화를 찍어야만 한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감독에게 돌아가는 수입은 기본적인 고정 개런티 이외에는 2차 매체 판매액의 1.75%밖에 돌아가지 않는다.

 

2018년 화제의 일본영화 중에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カメラを止めるな!)' 라는 일본영화가 있다. 제작비 3,000만원으로 찍은 저예산 영화였고 애초에는 개봉관도 2개관에 불과한, 무명 감독이 연출하고 무명 배우들이 나오는 전형적인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저예산 영화였다. 본래 예상목표를 3주간 상영으로 잡은 이 저예산 독립영화는 입소문에 따른 유명세로 작품성을 인정받아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흥행을 하면서 350개 상영관에서 200만 관객을 기록하고 300억 이상의 흥행수익을 올리는 엄청난 대박을 터트리며 제작비의 1,000배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일본 영화계의 구조적인 문제로 감독은 배급사에서 겨우 300만원의 보수를 받았고 배우들은 전원 무료출연에 영화 흥행에 따른 보너스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한숨 나오는 상황은 일본 영화계에서는 '흔한' 이야기라고 하면 믿으시겠는가?

 

카메라를멈추면안돼2018년 화제의 일본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감독이 받은 보수는 겨우 한화 300만원 정도의 보수였다. (사진=구글이미지)

 

일본 영화계는 영화 촬영 전부터 감독과 배우의 개런티 액수가 먼저 결정되고 아무리 히트를 해도 런닝개런티 따위는 없다. 독립영화가 아닌 메이저급 제작사에서 제작한 영화도 크게 예외는 없다. 메이저급 영화에서 주연배우를 제외하고 조연급이나 주조연급 배우들 모두 출연료는 10만엔(100만원)으로 모두 같았고 이 중에서 소속사 몫으로 30%, 원천징수로 10%를 제외하면 주연을 제외한 대다수 배우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금액은 60만원이 전부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영화보다는 CM과 드라마나 개인활동으로 수익을 메우고 있으며 어떻게든 내수에서 팔리고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으니 제작진이나 배급사 모두 해외진출을 하려는 의욕이 없다. 때문에 토호(東宝), 토에이(東映), 쇼치쿠(松竹)나 카도카와 같은 이름이 알려진 메이저급 영화사들도 배우에 대한 투자는 지지부진하다.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아시아권도 해외 수입 랭킹에서는 할리우드 영화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전 세계 동시개봉이 일반적이지만 일본의 경우엔 일본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이 연간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상황이 지속되는 문화적 '갈라파고스화'가 영화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참고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부러워한 우리나라의 영화 수익구조 시스템은 흥행 수입을 극장, 배급사와 영화 제작위원회(투자자)와 제작회사(감독과 제작진, 배우)가 대략 4:6의 비율로 가져가며 러닝개런티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역시 영화 제작환경이 열악하다고 이야기가 나오는 환경이라는 것을 감안해본다면 역설적인 이야기다.

 

연출과 배우의 벽

 

일본만화에서의 연출은 실제 현실과 동떨어진 과장되고 튀는 연출이 많으며 만화적인 오버액션은 기본이다.

 

이를 그대로 충실하게 스크린으로 제작할 경우 비현실적이라는 혹평을 피해갈 수 없다. 하지만 일본의 실사화는 헐리우드 식의 실사화처럼 원작을 현실적으로 각색하는 수준이 아닌 대부분 원작을 재현하는 선에서 이루어지며 흔히 망가(일본어로 만화) 스타일이라고 하는 일본식의 데포르메된 만화 그림체는 설정만 일본인이지 대부분 매우 서구적인 헤어스타일과 이목구비로 미화시켜놓은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일례로 사채꾼 우시지마와 블리치의 그림체를 비교해보자.) 당연히 일본 배우들이 분장하거나 연기하면 어울리지 않는 게 정상이다. 그래서 원작 캐릭터의 헤어스타일이나 복장을 구현한다 쳐도 배우들의 외형을 봤을때는 단지 코스프레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나 가장 어색한 것은 설정상 서양인 캐릭터를 일본인 배우들이 맡는 경우이다. 당연히 괴리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블리치사실 블리치 같은 만화를 구현해내기란 상당히 어렵다. (사진=구글이미지)

 

그나마 현대 일본을 다룬 작품인 바닷마을 다이어리나 심야식당, 리틀 포레스트나 그림체가 오밀조밀하진 않아도 최소한 주인공이 일본인인 은혼이나 일본식 찬바라 사극의 연장선인 바람의 검심 같은 작품들은 현실에 괴리감도 적었고 최소한 흥행에 성공했거나 악평을 피해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안 그래도 그렇게 많이 배정해주지 않은 제작비로 막대한 비용이 드는 3D와 CG를 커버하면 딱 쓴 비용만큼의 퀄리티가 나올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고 판권을 가진 원작인 진격의 거인이나 강철의 연금술사, 블리치 같은 작품들의 기본 설정과 스케일 모두 어벤져스 수준의 제작비를 들여도 원작대로 찍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작품들인데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를 제작하는데만 2억 5천만 달러, 거의 3천억에 근접하는 제작비를 들였다는 것을 감안해보자. 무분별한 실사화의 실패원인은 단순히 배우들과 일본식 감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바닷마을다이어리그래도 현실에 괴리감이 없게 그려진 만화들은 어느정도 악평을 피해가고 있다. 사진은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한국어 버전 (사진=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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