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 신인상의 선택들 (2001-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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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그래미가 선택한 신인들 (사진=구글이미지)

 

2001년 셸비 린 (Shelby Lynne)

 

셸비 린 (Shelby Lynne)셸비 린 (Shelby Lynne) (사진=구글이미지)

 

셸비 린은 1995년 셰릴 크로우의 'Tuesday night music club'을 프로듀스한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인 빌 보트렐의 프로듀스에 힘 입어 'I Am Shelby Lynne'을 1999년에 발표하였고 여러 히트 싱글을 내며 차트인한 성과로 2001년 빌보드 신인상의 명예를 얻었다. 그러나 이는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고 말았다. 첫 번째로 'I Shelby Lynn'은 그녀의 여섯번째 앨범으로 신인 아티스트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가수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빌보드 200 메인차트에 오른 앨범이라는 이유로 NARAS 측은 우리나라 개념의 신인상이 아닌 당해 떠오르고 부각된 부분에 대해 수상한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장르가 팝 록과 컨트리였고 이는 전작부터 모두 컨트리 차트에 곡들을 올렸던 상과를 감안한다면 유독 미국에서만 인기있는 장르인 컨트리에 대한 편파가 아니냐는 의혹을 또 다시 낳을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셸비 린에 밀려 수상하지 못한 그해의 아티스트로는 2001년 드루 힐(Dru Hill) 소속의 가수로 그 해 데뷔 앨범 6백만장의 성과를 올린 시스코(Sisqo)와 역시 데뷔 앨범 'Infest'로 월드 와이드 8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랩 메탈 밴드인 파파 로치(Papa Roach)가 있었다. 아직까지도 셸비 린은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점점 앨범판매고는 하락하고 있는 추세다.

 

2003년 노라 존스 (Norah Jones)

 

노라 존스 (Norah Jones)노라 존스 (Norah Jones) (사진=구글이미지)

 

지금은 너무 유명해져 버린 이름 중 하나인 노라 존스는 진정 미국의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엄청나게 충격적인 데뷔앨범 'Come away with me'를 들고 나왔다. 올해의 앨범상과 올해의 레코드상, 신인상까지 무려 일곱개 부문을 다 쓸어버린 이 앨범은 월드 와이드 2천7백만장 판매의 금자탑을 세웠을뿐만 아니라 팝과 재즈의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적인 성과까지도 완벽하게 세워냈다. 무려 신인이 그래미상 8개 후보에 올라서 8개 부문을 모두 수상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다만 최후의 양심이었는지 올해의 노래상 부문에서 본인 대신 같은 앨범의 수록곡 'Don't know why'의 작곡가인 제시 해리스(Jesse Harris)가 수상하며 1981년의 크리스토퍼 크로스의 기록을 넘어서는 쾌거에는 아쉽게도 실패했다.

 

존메이어노라 존스의 충격적일만큼의 데뷔 앨범은 인정하지만 2003년 많은 훌륭한 아티스트들을 두고 너무 한 사람에게 그래미 상을 퍼준건 아니었을까. 사진은 존 메이어 (사진=구글이미지)

 

2003년은 후보들의 면면도 역시 쟁쟁했다. 월드 와이드 1천8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틴에이저들을 대변하게 된 캐나다의 자존심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과 데뷔앨범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한 산타나의 뮤즈인 'The Game of love'의 주인공 미셀 브랜치(Michelle Branch), R&B의 신성으로 올라온 아샨티(Ashanti), 새롭게 나타난 15세의 천재 기타리스트이자 2000년대 최고의 뮤지션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는 존 메이어(John Mayer)가 있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노라 존스였을까. 상기의 모든 아티스트들이 노라 존스에게 밀린 이유는 간단했다. 이지 리스닝에 근접하고 아름다운 가사의 곡들은 9.11 테러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미국인들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고 그녀의 앨범은 모든 미국인의 마음을 치유했다. 굳이 적자면 다른 말 필요없이 곡도 분위기도 모두 다 좋았다. 단지 '너무 퍼줬다'는 평이 나왔을 뿐.

 

2005년 에반에센스 (Evanescence)

 

에반에센스 (Evanescence)에반에센스 (Evanescence) (사진=구글이미지)

 

정말 오랜만에 밴드음악이 신인상에 오르는 진기록를 보여주었다. 그 진기록의 주인공인 밴드 에반에센스는 1995년에 결성해 2000년의 미니앨범 이후 비교적 단기간에 왕좌에 올라갔다. 새로운 장르 트렌드인 뉴 메탈과 고딕적인 접근을 시도한 첫 앨범인 'Fallen'은 월드 와이드 1천7백만장을 판매하는 기염을 토하며 린킨파크(Linkin Park)가 2002년 앨리샤 키스(Alicia Keys)에게 좌절을 맛본 그래미 신인상이라는 왕좌에 올랐고 비록 이름은 생소할지언정 'Bring me to life'라는 곡은 국내에서도 싸이월드 시절에 들어본 분들이 많을 것이다. 에반에센스와 경합한 이름들은 뮤지컬적인 감성의 R&B 소울싱어인 헤더 헤들리(Heather Headley), 랩과 레게를 융합해 자기 영역을 구축한 자메이카 특급 션 폴(Sean Paul), 암울한 과거사를 딛고 랩 실력 하나만으로 데뷔앨범 'Get Rich or Die Tryin''으로 월드 와이드 1천2백만장을 판매하는 기염을 토하며 힙합 신에 충격을 던진 래퍼 피프티센트(50cent)였다.

 

하지만 에반에센스는 결국 2003년 유럽 투어 중에 밴드의 브레인이자 주축인 리드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벤 무디(Ben Moody)가 탈퇴하고 베이스인 윌 보이드(Will Boyd)가 2006년에 탈퇴하게 된다. 주축 멤버 둘의 공백을 어떻게든 다른 멤버로 메꿔서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해보지만 아쉽게도 이미 뉴 메탈이라는 장르의 힘은 떨어져 있었던지라 첫 앨범의 쇼크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기존의 드러머인 로키 그레이(Rocky Gray)와 리듬 기타인 존 르콤트(John LeCompt)가 모두 탈퇴하면서 보컬 에이미 리(Amy Lee)를 제외한 원년멤버들이 모두 교체되는 악재를 겪으며 에반에센스는 단독 스타디움급 밴드에서 페스티벌 라인업 급 밴드 수준으로 영향력이 작아져 예전만한 힘을 내지 못하는 밴드가 되어버렸고 원래부터 철지난 장르 취급을 받던 메탈 신은 잠깐 음악계의 메이저로 등극했던 역사를 뒤로 한 채 뉴메탈 밴드들의 몰락과 함께 또 다시 마이너의 늪 속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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