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빽과 - 난초 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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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심비디움 인시그네의 꽃술대와 입술꽃잎 (출처=orchidspecies.com)

 

난초란 무엇인가?

 

난초는 난초과(Orchidaceae)에 속하는 식물을 말합니다. 난초라고 하면 가느다란 나란히맥 잎이 쭉쭉 뻗은 보춘화 정도만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생각보다 난초의 스펙트럼은 방대합니다. 난초라 이름 불릴 수 있는 종(species)만 하더라도 약 3만 개로 추산되는데, 이건 속씨식물 중에서 가장 많은 수입니다. 자연적으로 교배나 변이가 잘 일어나고 인간에 의한 육종도 활발하기 때문에 난초의 품종은 무려 11만 개가 넘습니다. 그리고 난초의 종류는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물이 난초인지 알아보기 위해선 난초과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됩니다. 우선 꽃은 좌우로 대칭이지만 위아래로는 대칭하지 않습니다. 수술과 암술은 꽃술대(column: 칼럼) 안에 모여 있습니다. 꽃잎 중 한 장은 꽃가루를 옮겨줄 곤충을 유인하고 착지시킬 수 있도록 고도로 변형되었는데요, 이것을 입술꽃잎(labellum: 립)이라 합니다. 여러해살이풀이라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상의 특징을 지닌 식물들을 난초과에 포함시키고 난초라 부릅니다. 워낙 난초의 세계가 넓고 복잡하다 보니 저도 체계를 잡는 데 꽤나 오래 걸렸습니다. 꽃집 상품 정보는 품종명만 편한 대로 올라오고, 난초 관련 자료들은 더러 부정확하거나 오래되어 지금과는 맞지 않는 정보도 있었습니다. 정확한 학명이나 계통을 알기 위해 영문 자료는 물론이고 때로는 일본이나 중국 쪽 자료도 뒤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참에 난초의 종류에 대해 총정리하는 글을 써보자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난초의 체계에 대해 큰 그림을 잡고자 하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으니 혹시 잘못된 내용이나 낡은 내용이 있다면 댓글을 통해 날카로운 지적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진2] 난초 란 (출처=유튜브)

 

난? 란? 어떻게 쓰는 게 옳을까?

 

한글 맞춤법(문체부고시 제2017-12호)에 따르면, 난초를 의미하는 한자 '란'(蘭)은 단어 첫머리에 올 적에 두음법칙을 적용되어 '난'으로 적습니다. '란'이 단어 중간이나 뒤에 붙을 때는 본음대로 '란'이라 적어야 합니다. 다만, 합성어에서는 뒷말에도 두음법칙을 적용하여 '난'이라 적습니다. 예를 들어 '난초'는 두음법칙을 적용하어 '난'으로 적고, 합성어인 '타래난초' 역시 '난'으로 적습니다(한글 맞춤법 제12항 본문 및 붙임 1, 제11항 붙임 4 참고).

 

문제는 '란'(蘭)이 식물명에 외자로 붙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호접란이나 개제비난 같은 경우는 어떻게 써야 할까요? 

 

국립국어원은 한글 맞춤법 해설에서 '독자란, 비고란'과 같이 한자어가 결합한 경우에는 단일어로 보고 '란'이라 적는다고 합니다. '어린이난, 어머니난, 가십난'과 같이 고유어나 외래어 뒤에 '란'이 결합하는 경우에는 합성어로 보고 '난'이라 적습니다. 그렇다면 팔레놉시스의 이명인 호접란(胡蝶蘭)은 한자어가 결합했으니 '란'이라 적습니다. 개제비난(개제비-蘭)은 고유어와 한자어가 결합했으니 '난'이라 적어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표준식물명(국명)에서는 이런 한글 맞춤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개제비난처럼 '난'으로 적는 국명이 있는가 하면, 복주머니란, 나도제비란, 너도제비란, 콩짜개란, 거미란, 방울새란, 새둥지란, 지네발란 등과 같이 대부분의 국명에서는 고유어나 외래어가 붙어도 '란'으로 적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각에선 '란'으로 통일하자는 의견도 있어요. 맞춤법 규정에서처럼 합성어와 단일어를 구분해서 표기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으로 보이는데도 말이죠.

 

저는 한글 맞춤법에 따라 '난'과 '란'을 구별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3] 난초과의 계통

 

 

식물분류체계에 기초한 13가지 난초 집단

 

난초과는 석곡아과, 난초아과, 복주머니난아과, 바닐라아과, 의란아과 등 5개 아과로 나뉩니다. 이 중에서 가장 폭넓은 분류군이 석곡아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곡아과는 다시 높은석곡류와 낮은석곡류로 나뉘고요, 높은석곡류는 보춘화족, 풍란족, 수상란족, 병순란족, 입술난초족, 용구란족, 이삭단엽란족, 석곡족 등으로 세분될 수 있습니다. 석곡아과의 분류는 학자마다 제각각이고 수시로 바뀌니깐 너무 깊이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 같고 편의상 이 정도까지만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식물분류체계에 기초하여 저는 앞으로 난초의 종류를 아래의 13가지 집단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과, 아과, 족 단위에서는 되도록 한글명을 썼지만, 속 단위에서는 학명으로 통칭하는 경우가 많아서 속명은 대부분 라틴어 학명대로 표기했습니다.

 

  ① 보춘화족 (심비디움속, 온시디움속 등)

  ② 풍란족 (반다속, 팔레놉시스속 등)

  ③ 수상란족 (카틀레야속, 에피덴드룸속 등)

  ④ 병순란족

  ⑤ 입술난초족

  ⑥ 용구란족

  ⑦ 이삭단엽란족

  ⑧ 석곡족 (덴드로비움속 등)

  ⑨ 낮은석곡류 (천마속 등)

  ⑩ 난초아과

  ⑪ 복주머니난아과 (파피오페딜룸속 등)

  ⑫ 바닐라아과

  ⑬ 의란아과

※하단으로 갈수록 원시적인 형태에 가까움.

 

이 중에서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난초는 풍란족의 '팔레놉시스속'입니다. 일명 호접란이라고 부릅니다. 개업이나 승진을 축하할 때 선물용으로 나가는 양란 화분이 보통 팔레놉시스입니다. 팔레놉시스, 심비디움, 덴드로비움은 난초 3대속이라고 불려요. 그만큼 주요한 난초라고 볼 수 있죠. 여기에 카틀레야와 파피오페딜룸을 더해 난초 5대속이라고 하며, 반다와 온시디움 및 에피덴드룸을 더해서 난초 8대속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난초의 13가지 집단, 그중에서도 난초 8대속을 중심으로 설명을 해드릴 텐데요, 그 전에 앞서 난초의 기본적인 용어를 몇 가지 더 설명해 드리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사진4] 동양란 검색 시 보통 심비디움이 나온다 (출처=쿠팡)

 

 

[사진5] 서양란 검색 시 보통 팔레놉시스가 나온다 (출처=쿠팡)

 

난초의 또 다른 구분방식: 동양란/서양란/야생란

 

일반적으로는 난초를 동양란, 서양란, 야생란으로 구분하는 일이 많습니다. 동양란은 아시아에서 등록된 재배란을, 서양란은 서양에서 등록된 재배란을, 야생란은 말 그대로 야생에서 자라는 난초를 말합니다.

 

동양란이라고 한다면 보춘화(심비디움속), 풍란(반다속), 석곡(덴드로비움속) 등의 3종을 말합니다. 예로부터 동아시아 온대지역에서 키워오던 난초라서 우리에게 친숙하죠. 반면에 서양란 상당수는 중남미, 동남아, 아프리카와 같은 열대 지역에서 자라던 난초들입니다. 이들 열대란은 17세기 이후 유럽에 소개되었는데요, 관상가치가 높아서 육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보춘화, 풍란, 석곡을 제외한 난초 재배종은 대부분 서양란에 속합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난초의 95%가 서양란입니다. 다만, 동양란을 좀 더 고급으로 쳐주기 때문에 가격은 동양란이 더 비싸요.

 

그런데 동양란/서양란의 구분은 원예상의 구분이지 식물분류학적인 구분은 아닙니다. 같은 속 안에서도 동양란과 서양란이 제멋대로 나뉘고요, 서양란이지만 동아시아가 원산인 종도 많습니다. 학술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구분입니다. 최근에는 동양란/서양란이라는 용어 자체를 쓰지 말자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실생활에서는 아주 흔히 쓰이는 구분방식이기 때문에 일단은 알아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사진6] 복경성 난과 단경성 난 (출처=semanticscholar.org)

 

난초의 또 다른 구분방식: 지생란/착생란, 단경성/복경성

 

한편 뿌리를 내리는 습성에 따라 난초는 지생란과 착생란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식물처럼 땅에 뿌리를 박고 사는 난초가 지생란(terrestrial orchid)이라면, 나무나 바위, 이끼 등의 표면에 붙어서 사는 난초를 착생란(epiphytic orchid)이라 합니다. 착생란은 뿌리를 늘어트린 채 공기 중의 습기를 흡수해 살아가기 때문에 가뭄에 강합니다. 그래서 열대란 중에는 착생란이 많아요. 

 

주요 8대속 중에서 심비디움, 파피오페딜룸이 대부분 지생란이라면, 나머지 온시디움, 반다, 팔레놉시스, 카틀레야, 에피덴드룸, 덴드로비움 등은 착생란이 주를 이룹니다.

 

단경성 난과 복경성 난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식물처럼 줄기 하나가 수직으로 계속 성장하는 것을 단경성 난(monopodial orchid)이라 하고요, 여러 줄기가 돋아나며 수평으로 성장하는 것을 복경성 난(sympodial orchid)이라 합니다. 복경성 난은 줄기가 일정한 길이까지 자라다가 성장을 멈추고 수평으로 뻗은 뿌리줄기(rhizome: 라이좀)에서 다른 줄기가 새로 돋아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줄기는 알줄기(구경)처럼 부풀어 올라 물과 양분을 저장합니다. 이렇게 부풀어 오른 줄기를 가구경(pseudobulb: 벌브)라고 해요. 가구경이라는 말이 어려우니 흔히 '벌브'라고 부릅니다.

 

8대속 중에 반다, 팔레놉시스 정도가 단경성이라면, 나머지 심비디움, 온시디움, 카틀레야, 에피덴드룸, 덴드로비움은 복경성입니다.

 

 

[사진7] 심비디움의 포기나누기 (출처=greenflora.com)

 

난초의 무성번식: 씨앗 이외의 영양체(포기.줄기.고아 등)를 심기

 

복경성 난은 포기나누기(분주)로 증식시키기 쉽습니다. 포기나누기란 벌브와 연결된 뿌리줄기를 잘라 여러 포기로 나누어 심는 것을 말합니다. 난초가 복경성일 경우에는 보통 포기나누기를 많이 씁니다. 줄기꽂이나 고아따기를 하기도 해요. 줄기꽂이란 줄기 윗부분을 잘라 심는 것을 말하고요, 고아따기란 고아를 떼어 심는 것을 말합니다. 고아(高芽)는 줄기 위쪽이나 꽃자루오 돋는 새싹을 말해요. 번식이 여의치 않은 환경일 경우에 난초는 꽃눈이 필 자리에 이런 새싹을 피웁니다.

 

단경성 난초는 포기나누기가 어렵습니다. 그 대신에 반다 같은 경우는 줄기꽂이를 주로 쓰고요, 줄기가 짧은 팔레놉시스는 고아따기를 이용합니다.

 

 

[사진8] 새우난초의 씨앗 (출처=asitaka-yamabudou)

 

난초의 종자번식: 아무 데나 씨 뿌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무성번식을 하는 이유는 종자번식이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멋도 모르고 아무 데나 씨를 뿌리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난초 열매는 꼬투리 안에 수천 립의 작은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채 1mm가 되지 않는 세포덩어리입니다. 가벼워서 멀리 잘 퍼트릴 수 있지만, 영양분을 거의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싹 틔우기가 어렵습니다. 곰팡이나 버섯 같은 균류가 당분을 공급해 주어야 발아할 수 있어요.

 

난초는 균류와 공생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왔습니다. 난초가 엽록소를 만들 때까지는 주변에 있는 균류로부터 영양분을 조달받다가, 스스로 양분을 생산할 수 있게 되면 이때부터는 난초가 균류에게 양분을 공급해줍니다. 이러한 공생관계는 자연상태에서 가장 높은 효율로 후대를 잇는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난초재배에 있어서는 종자번식을 어렵게 하는 가장 주된 원인입니다.

 

종자번식을 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직파법입니다. 어미 난초의 뿌리 부분에는 균류가 많기 때문에 어미포기의 화분에 씨를 직접 뿌립니다. 정상적으로 발아할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둘째는 무균배양법입니다. 직파법보다 일반적인 종자번식 방법입니다. 균류가 난초의 종자에 당분을 공급하는 원리에서 착안하여 인위적으로 당분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무균배양법은 1922년 미국의 루이스 누드손(Lewis Knudson)이 개발했습니다. 당분이 포함된 인공배지에 파종해 싹을 틔운 다음 일반 식재로 옮겨 키웁니다. 하지만 무균배양법에서도 어려움은 많습니다. 싹을 틔우고 스스로 영양분을 생성할 때까지 키우려면 여러 재배시설이 필요하고 원하는 만큼 빨리 자라지도 않습니다.

 

※참고로 난초 씨앗을 검색해보겠다고 '오키드시드(orchid seed)'를 검색하면 자칫 야짤이 나올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동명의 성인용 미소녀 피규어 제조사가 있습니다.

 

 

[사진9] 난초 조직배양 (출처=plantcelltechnology.com)

 

난초의 조직배양: 난초 대량생산의 시대

 

난초는 귀합니다. 관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씨 뿌리는 것부터 성체까지 키우는 것도 어렵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난초를 군자의 상징이라며 좋아했으니 많이 키웠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극소수의 상층부에 의해서만 길러졌습니다. 일반인들이 실제 난초를 보기는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예로부터 수많은 창작물의 소재로 쓰였지만 대개는 관념적으로만 알려진 정도였습니다.

 

난초가 대중화된 건, 1960년 프랑스의 조르주 모렐(George Morel)이 세계 최초로 난초 조직배양에 성공한 이후부터입니다. 조직배양은 생체의 일부를 떼어내 체세포분열로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2년부터 영리를 목적으로 조직배양을 시작하여 대량공급이 가능해졌습니다. 1976년 한국난협회가 설립되어 창경궁(당시 창경원)에서 제1회 난 전시회가 열렸고요, 1981년에는 수입자유화가 이루어져 시중에서 접할 수 있는 품종이 다채로워졌습니다. 

 

오늘날 꽃집에서 볼 수 있는 난초 대다수는 조직배양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이제는 한 개의 싹에서 연간 만 개 이상의 개체를 증식시킬 수 있습니다. 덩달아 가격도 저렴해졌어요. 5만 원대 이하의 저가 상품도 많아졌습니다. 조직배양은 남획에 취약한 수많은 야생란들을 멸종위기로부터 구해주었습니다.

 

여전히 난초는 귀한 대접을 받는 식물이지만 조직배양기술의 발전 덕분에 의외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이기도 합니다. 개업해도 난초고요, 승진해도 난초, 선물로도 난초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주 접할 수밖에 없는 게 난초입니다. 꽃집의 주된 수입원이 난초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원예에 문외한이시라면 함부로 사 기를 생각은 자제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난초 대량생산의 시대라고 하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관리하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니깐요.

 

심비디움, 팔레놉시스와 같은 주요 난초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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