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한정식 '코스요리' 라는 서비스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앞에서 이야기했듯 한식은 동시성과 조합(harmony)라는 방향으로 발전을 했다. 코스요리는 시간의 흐름을 제어하여 서비스의 만족감을 배가시키는 방식이다.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 벌써부터 든다.
제대로 망쳐버린 실패사례를 한번 이야기해보자.
나는 서울 시내 고급 한정식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있다.
정동 (사진=1boon)
위치는 정동쯤이고 1인당 객단가는 코스로 5만원에서 7만원 정도로 책정되어 있다. 특히나 12월 24일이면 크리스마스 이브고 사람들이 많이 몰릴 것 같다는게 일반적인 생각 아닐까? 특히나 오늘 같은 날 요식업에서 일한다면 그냥 집에는 늦게 들어가는걸로, 친구들과 약속 따윈 없는걸로 생각하는게 보통이다. 뭐 기대하고 실망한다고 탓할건 아니지만 오히려 기대하는 편이 바보같으니까.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생각보다 예약이 많이 안찬다.
'얼래? 여차하면 평소보다 빨리 끝날 수도 있겠는데?' 하고 기대해봤지만 그 순간 사장이 예약을 잡았다. 8시에 2명이란다. 에휴, 그렇지 뭐. 그래도 원래 11시까지인데 한 10시쯤이면 가겠지. 그런데 예상보다 실제로오는 손님들이 별로 없다. 6~7시 타임은 이제 다 끝나가고... 아 한팀이 남았네? 그것도 8시? 그냥 예약 취소하면 안되나.
이번엔 손님이다.
2주 전에 예약을 했다. 그날 일이 좀 늦게 끝나서 8시에 예약을 잡았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싶어 영업시간을 물어봤다. 11시까지랜다. 그럼 뭐 안심이지 하고 예약을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이기도 하고 내 딴에는 좀 무리해서라도 좋은데 한번 가보자 싶어 예약을 했다. 7시 40분쯤 가까운 역에 도착해서 기다리는 여친님께 전화가 왔다. 매번 1시간씩은 일찍 끝내주던 사장놈이 오늘따라 집에 가란 말을 안해서 늦었단다. 짜증이 단단히 나서 전화를 했고, 조금 늦는다고 가게에 미리 연락을 해두란다.
가게에 전화를 했다. 한 15분 늦을 것 같다. 괜찮은지 물어보니 괜찮단다. 바로 전화를 끊더니 다시 전화가 왔다. 오늘 주방 마감이 10시반이라 늦을 것 같으면 혹시 주문을 미리 해줄 수 있냐고 한다. 그래서 그럼 가장 비싼 코스로 2명 미리 주문을 부탁했다. 그리고 나서 여친님을 기다려서 같이 가게로 갔다. 예상보다 늦어 8시반에 도착했다.
들어가보니 가게가 한산하다. 예약이 얼마 안남았다던 사장놈 이야기는 다 거짓말이었나보다. 뭐 장사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지. 한쪽 구석에 있는 룸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앉아서 자리를 풀자마자 한상을 내어준다. 이것 저것 그것. 뭐 처음이니까 싶어 와인을 한잔씩 하고 있었다. 배도 고프기도 하고 이것저것 주워먹으면서 한잔 두잔 하고 있는데 음식을 내어오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밀어내기 당한다는 느낌이다.
아무리 좀 늦었다고 해도 뭐가 그리 급한지 너무 테이블이 뒤죽박죽이다. 차가운 샐러드에 육회와 잡채가 있고 거기에 김치전이 나오고... 그러면서 모듬회가 나왔다. 잡채 위에는 머리카락이 하나 잘 놓여져 있고, 산낙지에선 조그마한 플라스틱 조각이 나왔다. 그것은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가고 있는데 아무래도 템포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조금씩 짜증이 났다. 그러던차에 또 다음 음식을 내어주고 싶었나보다. 남아있는 음식을 다짜고짜 들어가더니 트레이에...
참다못한 여친님이 한 마디 하셨다. "그거 아직 다 안 먹었는데요?"
그러자 점원 왈 "자리가 모자라서 작은 접시에 옮기려고요."
짜증이 배어있는 말투다. 아니 테이블이 가득 차 자리가 모자란게 우리 탓인가? 그 다음에 매니져쯤 되어보이는 직원이 오기에 나도 한마디 했다. 지금 이게 얼마짜리 저녁인데 하나도 즐겁지가 않다며 낙지에서 나온 플라스틱 조각을 보여주니 죄송하다며 얼른 가져가서 다시 내어주더라. 아니 그건 그냥 조심하라고 한거였고 그냥 남은거 먹고 치우려고 했다. 결국 다시 나온 음식은 거의 건드리지도 못했다.
메인이었던 보리굴비에 간장게장과 맑은국물과 함께 밥, 그리고 숭늉까지 내어준 시간이 9시 7분이더라. 결국 40분도 안되는 시간에 코스를 다 때려 부어 놓는 가게가 어디있나. 기분 나쁜 마음을 다잡고 식사를 끝내고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10시. 그 시간엔 가게가 텅 비었더라. 빨리 끝내고 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나 늦은 시간에 예약을 잡은건 사장을 욕할일이고, 손님을 받았으면 제대로 서비스를 해야지 이게 무슨 행패인가 싶더라.
주방의 조직도 (사진=구글이미지)
각각의 음식 하나하나는 괜찮았다. 재료도 좋고, 조리도 나쁘지 않아보였다. 그러나 조합과 순서, 서비스가 너무 엉망이었다. 순서와 템포는 물론이고 각각의 요리들이 서로 하나도 조화가 되지 않아 같이 먹으면 비린내를 극대화 시키고, 어떤 음식은 너무 짜서 다른 음식의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게 만들었다. 동네 반찬가게나 하면 좋을 실력을 가지고 고급 레스토랑을 차려놓은 꼴이라는 느낌. 코스요리를 할 자격도 의지도 없는 가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장이 비슷한 가게를 여러개 차려놓고 시그니쳐 메뉴를 이곳 저곳에 돌려쓰면서 모아서 전시하는 느낌의 가게로 시험하는 레스토랑으로 보인다. 아마 각각의 가게에도 총괄쉐프급은 없고, 한 두가지 요리를 잘 만드는 사람들을 고용해둔 다음, 그 음식을 다른 가게들에서도 사용하는 식으로 운영되는 것 같다. 그것들을 모아서 코스요리 형식으로 내어놓는 가게가 내가 간 곳이었고.
매니져라고 할까? 전체적인 서비스를 관장하고 가게를 운영할만한 직원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실패를 가져오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모처럼의 크리스마스 디너를 거하게 망쳐놓고 돈은 돈대로 쓴 기분이라 계속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부디 다른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달빛 아래 정동에서 돈 쓰고 기분 나빴던 이야기다.
Copyright ⓒ 무우さ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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