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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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요리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나라 3개국이 있다.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인데 그 들이 주장하는 이유가 재미있다.

 

먼저 이탈리아는 대부분의 서양요리의 원형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도 그럴것이 고대 로마제국을 경영하며 많은 문화를 유럽 전체는 물론 지중해를 중심으로 북아프리카 일대 및 소아시아 부근까지 많은 음식문화들이 얽히고 섞인채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그리고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시기 합스부르크 왕가를 중심으로 많은 귀족들이 결혼으로 얽히며 취향과 문화가 섞여 들었다. 1차대전 이전까지 전쟁을 해도 장교(귀족)들은 서로 포로로 잡더라도 제대로 대우해주는 것이 관례였다고 하니 그 끈끈함은 역시 핏줄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로마인로마인들의 식사 (사진=일분)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시작된 요리문화를 자국의 풍부한 재료들은 이용하여 완성시킨 공로를 인정받기 원한다. 근세, 근대를 거쳐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가장 강한 왕권이 확립되었고, 그 왕족들을 중심으로 한 귀족문화가 진하고도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생각해보라.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전국 각지에서 (또는 외국에서) 생산된 좋은 재료들을 진귀한 향신료와 함께 오랜 시간을 들여 전문가가 만들어내는 요리들을 맛볼 수 있는 계층은 왕족을 위시한 귀족 계급 뿐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서양요리의 여러가지 메뉴들을 귀족들이 아닌 평민들(≠서민)이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다. 왕정이 몰락하고 공화정이 들어서면서 궁정에서 일하던 많은 요리사들이 그 곳을 떠나게 되었고, 그들 중 상당수가 돈을 내고 음식을 만들어 파는 식당을 차리면서 현대 서양의 레스토랑이 출발하게 된다.

 

프랑스과거 한상에 모두 먹던 프랑스인의 식사 (사진=중앙일보)

 

이탈리아는 서양요리의 시작을 다졌고, 그 곳에 기술과 자본, 시간을 들여 작품을 완성한 것이 프랑스였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러시아가 끼어드는 이유는 '서빙(serving)의 방식'에 있다. 날씨가 추운 러시아에선 미리 만들어둔 음식들이 쉽게 식고 차갑게 변하여 맛과 향 즉 품질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소비자(음식을 먹는 사람=서비스를 받는 사람)에게 맞추어 요리들을 하나하나 내어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서양요리 자체의 컨텐츠에 집중했다면 러시아는 그것을 제공하는 방식을 확립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서양요리에는 '시간의 흐름' 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러시아러시아의 코스요리 (사진=구글이미지)

 

서양요리와 한식을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이 '시간의 흐름'이 아닐까 한다.

 

한식은 잘 조화된 여러가지 음식들을 한상 가득 내어주는 '한상차림'의 문화이다. 그 안에서 소비자 개개인은 자신에게 맞는 새롭거나 독창적인 조합을 발견하고 즐기는 것이 한식의 매력이다. 고기를 그냥 구워서도 먹어보고, 소금도 찍었지만 다음엔 젓갈과 곁들여보고 누군가는 묵은지와 함께 즐긴다. 한상 가득 차려진 요리들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범위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이라는 개념보다는 다양한 재료가 함께 조화를 이루는 '동시성'에 촛점이 맞춰진다.

 

이에 반해 서양의 요리는 '코스(course)'라는 형태로 차례대로 나오면서 시간의 흐름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처음에는 식지 않은(적정한 온도)의 요리를 제공하기 위함이었지만 그 개념이 발전함에 따라 소비자가 경험하는 체험의 순서를 제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처음엔 차가운 음식과 채소류로 속을 준비시키고 신호를 보낸다. 따뜻한 음식이 들어오면 위장이 활성화되고 주식인 탄수화물이 등장한다.그리고는 주인공이지만 소화에 조금 버거운 고기 요리를 맞이할 시간이다. 그리고 식사를 마감하는 순간에는 달달한 디저트로 포만감과 만족감을 유도한다.

 

 

이러한 체험의 순서를 조절하는 기술은 현대에 와서 조금 더 짧은 시간에 다양한 체험을 만들어주는 수준에 이르렀다.

 

다양한 식감과 온도를 가진 음식을 한입에 넣어 음미하게 되면 체온에 가까운 순서대로 맛이 느껴진다. 단단한 식감을 가진 음식의 겉을 딱딱하고 새콤한 맛으로 감싸 첫 입에는 상큼하면서도 거친 식감을 느끼다가 그 안에 숨겨진 아이스크림이 녹으면서 달콤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입안에 퍼지는 식이다. 어떤 고추는 씹는 순간 매운 맛이 거칠게 치고 올라오다가 이내 사그러진다. 그에 반해 한국의 고춧가루는 조금 느리게 매운 맛이 올라와서는 여운이 남는다.

 

식사 전체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디자인하는 수준에서 입 안에 넣은 한 스푼의 요리안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경험을 만들어주는 요리가 가능해졌다. 요즘은 이런 요리를 '분자요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모든것의 개념이 러시아의 차가운 기후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하면 어떠한가? 서양요리의 한 축으로 끼워줄만하지 않을까?

 

분자요리분자요리 (사진=네이버포스트)

Copyright ⓒ 무우さ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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