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 그리고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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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면, 야구가 끝난다. 그라운드는 텅 비고 관중석은 고요해진다. 허나 그런 와중에도 언제나 시끄러운 곳이 있으니 바로 프로야구 구단의 운영진과 단장, 스탭들이다.

 

그 동안의 우리는 어떻게 프로야구팀의 겨울이 흘러가는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고 알려지지도 않았었다. 단편적이나마 느낄 수 있는 프로야구 프런트나 스카우트의 풍경은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머니볼'이나 대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내 생애의 마지막 변화구'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는 국내의 사정이 아닌 미국 메이저리그를 다룬 작품들이었다. 물론 에세이를 토대로 한 작품도 있고 영화적 과장이 들어간 작품들이지만 굉장히 세세하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간 영상물들이었다.

 

머니볼영화 머니볼의 한 장면. '스토브리그' 드림즈의 유니폼과 머니볼의 모델인 MLB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유니폼은 꽤나 닮았다. (사진=구글이미지)

 

하지만 한국의 야구 이야기가 목말랐던 팬들에게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색다른 영역을 개척한 드라마로 이름이 남을 수 있지 않을까? 그나마 야구드라마라고 할만한 공포의 외인구단 드라마판 같은 경우엔 야구만화가 원작이었지만 원작을 모욕했다는 혹평만 받은 채 종영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경기장면은 별로 없지만 실질적으로 야구를 제대로 다뤘다고 할만한 드라마는 이제서야 겨우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여러가지 요소들은 시청자이자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재미를 느끼게 할 만한 요소가 매우 많이 있었다.

 

+ 드라마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1. 현실적인 문제들과 해결방안 제시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사건들인 스카우팅 비리, 에이전트 문제, 모기업의 지원 축소를 비롯하여 모두 그 동안의 프로야구판에서는 심심치 않게 보이던 악재들이다.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승부조작을 제외한 프로야구팀이 직면할 수 있는 악재라는 악재는 죄다 보여준다. 하지만 진정한 묘미는 이 악재들을 대처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굉장히 개연성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스토브리그드라마 스토브리그는 단장이 악재를 현실적이고 개연성있게 풀어나가는데 그 묘미가 있다. (사진=스토브리그)

 

스카우트 팀장의 비리는 결정적인 증거를 타팀 선수에게 의지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추적이나 증거수집이 한몫하여 자신의 지위나 권위를 남용하는 스카우트 팀장(고세혁)을 축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전트로 변신해 특정팀을 개인적 감정으로 망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스카우트 팀장은 현행 에이전트 체제의 도입과 연봉협상제도의 변경을 그려내면서도 현실에 충분히 존재할법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용병투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해외 병역도피로 낙인이 찍힌 전 국가대표 선수를 용병으로 데려오는 강수를 두되 시즌이 끝나면 현역 입대해서 군복무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해명으로 논란을 돌파해 나간다. 모기업의 지원 축소에도 단장과 운영팀장은 기존 찬란하던 시절 축출되었던 배팅볼 투수나 트레이너들, 불펜포수들을 다시금 불러들이고 전지훈련 취소로 인해 국내 자체 훈련으로 대응해 나간다.

 

백차승군 문제로 국적을 포기했던 차승 백(사진=뉴스원)

 

사례적으로 있을 법 하거나 혹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상세히 다룬 것은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만큼 그 상황에 대한 드라마 작가 나름대로의 돌파구와 해결책을 보여준다. 물론 현실의 야구는 아무리 화려한 청사진을 그려도 시즌이 시작하고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어떻게 될 지는 그 누구도 모르지만 적어도 팀에 닥친 논란이나 악재를 단순한 지옥훈련 내지는 극기훈련이 아닌 최소한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그 동안 한국 드라마 중에 몇이나 있었을까?

 

2. 약팀의 방정식

 

위의 외적인 문제들을 차지하고서라도 작중 주인공팀인 드림즈는 내적으로도 여러가지 불안요소와 악재에 직면한다. 야구에 관심없이 그저 자리만 지키는 구단 사장과 언제 팀을 해체할 지 타이밍만 재며 지원이나 급여를 삭감하기에 바쁜 구단주 대행, 의욕을 잃은 감독과 서로 눈치싸움을 벌이는 수석코치 이하 스탭들, 팀장과 차장이 갈등을 벌이는 스카우트팀만으로도 부족해서 팀의 분위기를 망치는 선수들이나 연봉협상을 질질 끌면서 무려 단장과 운영팀장을 술자리로 불러내거나 단장 차에 테러를 가하는 등 굳이 드라마적인 연출을 제하고서라도 무엇 하나 머리아픈 요소가 아닌 게 없을 만큼 힘겨운 팀이다.

그나마도 있는 유망주는 채 키워내기도 전에 은퇴하거나 싹수가 보이는 유망주는 입스(Yips)[각주:1]증상을 보여 골머리를 앓고, 팀의 분위기를 잡고 신인들에게 멘토가 되어줄만한 베테랑은 연봉 삭감과 더불어 선수은퇴의 기로에 놓인 위기를 맞는다. 차라리 팀 분위기라도 좋았으면 모르겠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패배를 기록해도 실실 웃고들 있는 분위기를 감안하면 드림즈는 정말 지독하게 악재와 불안요소만 모아둔 팀이며 정말로 이렇게 최악인 팀이 없을 정도로 안 좋은 공식들만 합쳐서 만들어둔 팀이다.

 

임동규극 중 임동규(조한선 분) (사진=구글이미지)

 

이렇듯 모든 공식 공식마다 뭉쳐 최악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드림즈의 현상황이지만 신임 단장 백승수는 여러가지 과정을 거치고 가끔은 목소리도 높여가며 드라마적인 과장이 섞여있다 해도 비교적 단기간에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나간다. 있을 수 있는 모든 악재를 다 모아놨다고 해도 할말이 없는 팀이지만 물론 픽션인 만큼 이 모든 불안요소들을 다 가진 팀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따져본다면 모든 팀이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는 약점과 불안요소들이고 굳이 약팀이 아닌 강팀조차도 팀 내부적인 불안요소는 어느 정도 다 가지고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내부적인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백승수 단장의 모습은 가히 이상적인 단장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약팀들이 처음부터 약팀이었겠는가? 야구는 멘탈과 분위기의 스포츠고 충분해보이는 강팀도 내부적인 문제가 크게 불거지면 그 부분으로부터 서서히 무너져 한 시즌 동안 머리아플 수 있는 게 현실이다.

 

3. 그리고, 프로야구

 

 

2019년 한국 프로야구가 한 시즌을 보내는 동안 역시나 수많은 사건사고와 논란을 겪었다. 당장 도핑전력이 있는 선수에게 MVP를 수여해놓고도 KBO 신인 오리엔테이션 때는 금지약물 복용에 대해 엄정한 경고를 내린다며 교육하는 아이러니한 실태를 시작으로, 선수들 역시 팬서비스 파문부터 원정도박, 병역기피 의혹, 음주운전이나 간통, 임산부 주차구역 무단주차 등의 오만가지 논란을 몰고다닌 한 해였다. 강팀과 약팀을 막론하고 뉴스면을 한번씩은 달궜으며 관중수는 전년대비 큰 폭으로 하락한 구단이 다수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이 프로야구판 역시도 위기의 시작일 수도 있다.

 

류제국간통이라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은퇴를 선언한 류제국 (사진=구글이미지)

 

단순히 미세먼지나 엘롯기가 예전만큼 성적이 안 나와서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작금의 KBO의 대처와 해명은 너무나도 안이했으며 특히나 경기력 저하는 '정책'만 가지고는 더 이상 막을 수 없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바꿔야 할 때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개선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스토브리그라는 드라마의 설정과 경과를 현실에 대입하기엔 무리가 있고 극적인 과장도 섞여 있지만 그 극적인 요소도 역시 현실의 상황들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요소임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의 희망을 가져 보아도 괜찮으리라 믿는다.

 

야구팬에게 가장 슬픈 날은 야구가 끝나는 날이지만 가장 기쁜 날은 야구가 시작하는 날이다. 가장 기쁜 날이 어느덧 채 2개월도 남지 않았다. 적어도 부디, 몇 회 남지 않은 TV속 스토브리그만큼 그라운드의 실제 리그를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었으면 하며 글을 마친다.

 

20202020년 프로야구도 재밌게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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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큰 충격을 받았거나, 심한 쇼크를 겪었을 때 몸이 제멋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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