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FC '칼레의 기적'을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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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의 주장은 슈퍼마켓 사장, 공격수는 까르푸 직원, 위치는 4부리그에 홈 경기장은 겨우 1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말이 4부리그지 사실상 우리가 말하는 동호회, 소위 '조기축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팀이 기적을 일으킨 적이 있다. 2000년 축구클럽 '칼레'는 프랑스 FA컵에서 2부리그 우승팀 릴도 스트라스부르도 심지어 지난 시즌 우승팀 지롱댕 보르도도 3대1로 누르면서 10전 전승의 기록을 세우고 결승에 진출했다.

 

칼레2000년 프랑스 FA컵을 주목하게 한 '칼레'팀 (사진=네이버)

 

아쉽게도 결승전에서 선취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종료직전 주심의 오판에 대한 페널티킥으로 FC 낭트에게 비록 우승컵은 주었지만 낭트의 주장 미카엘 랑드루는 칼레의 주장인 수비수 레지날 베크의 손을 이끌고 본부석까지 올라가 우승컵을 함께 들어올리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고, 앞선 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 당시 보다 더 많은 4만여 칼레 시민이 원정응원을 펼쳤으며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프랑스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칼레 팀을 '인간의 얼굴을 한 축구의 수호자'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FA컵의 역사란 꽤나 오래되었다.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잉글랜드 프로 축구의 경우 조선에 신미양요가 일어난 1871-72시즌에 FA컵이 태동했다. 그 후 축구협회 산하 모든 리그 팀이 격돌하는 토너먼트다 보니 강팀이 상대적 약팀에게 덜미를 잡혀 탈락하는 이변을 자주 속출했으며 이른바 '자이언트 킬링'을 보기 위해 이 경기를 기대하는 팬들도 있을 정도다. 이는 한국의 FA컵도 마찬가지다.

 

칼레의기적당시 본부석에서 우승컵을 함께 들어올리는 양팀 주장 (사진=구글이미지)

 

2005년 지금의 2부리그 격인 내셔널리그 소속의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가 부산, 대전, 포항, 전남을 차례로 격침시켜 결승전에 진출했고, 2016년에는 부천 FC 1995가 4강전에, 2017년에는 목포시청 축구단이 4강에 부산 아이파크가 결승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려 3부리그 격인 K3리그 어드밴스 소속의 화성FC가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다. 2013년에 창단된 화성FC는 애초에 K리그 진입을 목표로 창단해 무서운 속도로 팀을 키우고 있음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이번 FA컵의 성적은 경이롭다.

 

하나은행 FA컵 4강 1차전에서 승리를 거둔 화성FC 선수들 (사진=구글이미지)

 

3라운드에서 2부리그 안산 그리너스를 3대2로 격파한 것으로 시작으로 4라운드에서는 양평FC를, 16강전에서는 천안시청을 승부차기 끝에 물리치고, 8강전에서 K1 경남FC를 승리로 장식하며 4강에 올랐다. 하지만 반대편의 대전 코레일과 상주 상무의 대진과는 반대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K1의 수원을 이기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화성종합경기타운 주경기장에서 열린 4강 1라운드에서 전반 23분 측면 돌파에 이은 그림같은 중거리슛을 문준호가 날렸고 수원의 골키퍼 노동건은 몸을 날려보았지만 공은 골망을 흔들었다. 그렇게 선제골을 지킨 화성FC는 1대0 승리를 거뒀다.

 

'배수의 진' 이임생 수원 삼성 감독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극성맞기로 소문난 수원 서포터즈 쪽에서는 야유가 쏟아졌다. 원정임에도 몇 배나 많은 팬들이었다. 승리의 기쁨이 가득한 화성종합경기타운 경기장에는 홈팀의 환호보다 야유가 훨씬 컸다. 이에 분이 가라앉지 않은 서포터들은 버스로 향했다. 이윽고 버스를 타기 위해 도착한 수원 삼성의 이임생 감독이 등장하다 패배를 성토하는 목소리를 냈다.

 

버스를 막고 선 수원 서포터즈 (사진=인터풋볼)

 

목소리를 들은 이 감독은 서포터쪽으로 향했다. 구단관계자들이 감독을 말렸고, 심지어 팬들을 향해 다가가려는 이 감독과 말리려는 관계자들 사이에 가벼운 몸싸움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관계자를 뿌리진 이 감독은 수원 서포터즈들 앞에 섰다. 그리고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 뒤 허리까지 굽히며 사과했다. 이런 감독을 향해 응원 구호도 있었지만 퇴진 구호가 반반씩 섞여 들었다.

 

이임생위기의 이임생 감독 (사진=스포츠경향)

 

그 후 공식 기자회견자리에서 이 감독은 침통한 목소리로 FA컵에서 우승을 하지 못할 경우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준비했던 플레이가 나오지 않았고 다른 핑계를 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만약 우승 트로피를 못 드린다면 거기에 대해 생각한 것이 있다며 조금 더 믿어달라고 부탁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거듭 답변한 이 감독은 사실상 사퇴를 걸고 2차전을 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졸속 행정'이 만든 종교 행사

 

그렇게 배수의 진을 쳐야할 수원은 또 하나의 골칫거리 소식을 듣게 되었다. 2차전을 치를 '빅버드' 수원월드컵경기장이 졸속 행정으로 인해 제법 망가진 것이다.

 

지난 1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는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이하 HWPL)가 주관하는 '만국회의'가 열렸다. HWPL은 한 종교 집단의 위장단체이며 교주가 이 대표를 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만국회의는 이미 앞서 2017년 화성, 2018년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도 열렸으며 이때 국민체육 시설 사용 유무에 따른 찬반 여론이 엇갈린 바 있다. 이에 과거를 알지 못한것처럼 경기장 대여를 허가한 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의 이사장인 경기도지사 이재명에게도 비난의 화살이 돌아갔다.

 

 

이미 이를 알게 된 기독교 단체와 피해자 단체는 10일 대관 취소를 요청했고, 다음날인 11일 종교 단체의 피해자들이 경기도청 앞에서 대관 허가 취소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에 경기도청이 여러 가지 이유를 바탕으로 취소를 통보하는 공문을 HWPL에 보냈다. 하지만 이 공문에도 행사는 강행되었다. 벌써 전날인 17일부터 종교 단체의 교인들은 경기장에 만국회의를 준비했다고 한다. 이미 관중석에 스피커와 음향 장비를 설치했고 그라운드 주변에도 장비를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대관 허가 취소 촉구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 (사진=노컷뉴스)

 

그리고 본 행사에 접어들자 새벽부터 경비를 세워 행사 진행을 위해 경기장 출입을 통제했고 경기장 내 스카이박스와 엘리베이터를 점거하고 행사 준비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 이를 뒤늦게 안 재단은 뒤늦게 건조물 침입죄 및 업무방해죄로 고소에 나섰지만 이미 교인들은 경기장내에서 인터넷 중계 등을 하며 메스 게임을 비롯한 여러 행사들을 가지며 그들만의 축제를 다 벌이고 난 뒤에였다. 이에 2차전을 펼친 수원 삼성은 망가진 잔디와 시설들을 어느 정도 감수하고 게임에 나서야 한다.

 

문준호 그리고 유병수

 

그림같은 결승골을 터트린 문준호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

바로 프로 축구의 첫 시작을 수원 삼성에서 하게 된 것. 2015년 광주 하계 유나버시아드 대표였던 문준호는 201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입단했다. 하지만 2년간 아시안 챔피언스 리그 1경기와 FA컵 1경기 출장에 그쳤고 결국 리그 데뷔는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출장 기회를 잡기 위해 지난 2018년 같은 팀의 김진래와 함께 2부리그인 FC안양으로 임대되었다. 그러나 거기서도 특출난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자 수원 삼성은 올 시즌 시작 전 계약을 해지했고 결국 지금의 화성FC에 입단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방출한 친정팀을 상대로 문준호는 그림같은 골을 기록했고, 울분을 터트리는 감동적인 세레모니를 하기도 했다.

 

황금같은 결승골의 주인공 문준호 (사진=한국일보)

 

또 한명의 주목해야 될 선수는 2010년 K리그 득점왕 유병수였다.

백넘버 7번을 달고 있던 유명수는 한국프로축구 역사상 최연소 한국인 득점왕이었으며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단 두 시즌 반을 뛰었지만 케빈 오리스, 제난 라돈치치, 스테판 무고샤 같은 쟁쟁한 외국인 선수도 그의 다득점 기록을 깨지 못하고 있다. 당시 전국추계 1, 2학년 대학축구대회에서 홍익대를 우승으로 이끌며 주목을 받던 유병수의 잠재성을 알아본 인천은 당시 공격의 주축인 방승환을 제주로 이적시키면서 유병수를 데려왔다.

 

이에 첫 시즌 27경기에서 12골을 뽑아내며 화려한 데뷔를 했고, 다음시즌인 2010년에는 28경기 22골. 즉 경기당 0.79골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는 가장 빈약한 공격을 했던 광주 상무 불사조의 팀 득점보다도 많은 기록이었다. 득점력 뿐 아니라 중거리의 프리킥 찬스에서 강력한 무회전 프리킥을 구사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특출난 모습을 보였으며 특유의 엠블렘을 입에 물고 질주하는 세레모니는 인천 팬들에게 높은 인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유병수 특유의 세레모니 (사진=구글이미지)

 

이후 조광래호인 국가대표에서 몇 차례 교체투입되었으나 팀웍이 맞지 않았는지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특히나 본선 호주전에서는 후반전에 교체로 들어갔다가 30분 뒤 다시 교체당하는 굴욕을 겪기도 하며 국가대표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당시 최효진, 김치우, 데얀 등을 모두 타 팀[각주:1]에 뺏긴 인천은 유병수 많은 팀의 레전드로 남아주길 원했지만, 2011년 사우디의 알 힐랄로 이적을 했고 2년 뒤인 2013 시즌 러시아의 FC 로스토프로 이적하기도 했다.

 

다시 유병수는 부활할 수 있을까 (사진=축구협회)

결국 이뤄낸 유럽 진출이지만 현지 적응 문제 등으로 저조한 활약에 그쳤고 결국 2016년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하며 K3리그팀이었던 김포시민축구단에서 경기력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J리그와 호주 리그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결국 입단에 실패하며 다시금 K3리그의 화성FC로 이적을 결정했다. 여기에서 다시 폼이 살아나며 득점포를 가동했고 8강 경남전에서는 천금과 같은 결승골로 팀을 4강으로 진출 시켰다.

 

약팀 특유의 수비 위주의 공격을 보이다 세트피스로 득점을 기록한 것도 아닌 골을 기록하고서도 90분 전체를 리드하며 경기를 한 화성FC. 과연 빅버드에서 펼쳐진 2차전에서 한국판 '칼레의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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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교롭게도 모두 FC서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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