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 등번호사 : 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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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번호 5번은 팀의 중심이자 팀의 투지다. 수비의 중심에서 팀의 수비를 진두지휘하는 돌격대장들이 달기도 하고, 미드필더 꼭지점의 맨 마지막에서 진두지휘하는 파이터형 수비형 미드필더가 달기도 한다. 1980년의 대한민국 대표팀의 최고 수비수 정용환이 2000년대에는 미드필더 김남일이 5번을 달았다는 것만 보더라도 여러분들은 국가대표의 5번의 의미를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 등번호의 역사 오늘은 5번이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상의 (조선방직 축구단)

 

1922년생의 이상의는 스위스 월드컵에 참전해 스쿼드 기록에는 공식되어 있으나, 후의 선수로의 기록은 전무하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정용환 (대우 로얄즈)

 

 

 

1970년대 김호 이후 1990년대 홍명보 이전 1980년대 대한민국 대표팀 수비의 핵은 정용환이었다. 부산 동래 출신의 그는 수비수 육성에 일가견이 있던 동래고에 진학하게 되고 게다가 동래고 지도자에 국가대표 수비수 김호가 부임하면서 그의 기량은 더욱 발전한다. 178cm의 작은 키지만 끝없이 새로운 연습을 연구하고 반복한 결과 이중점프로 오해받을 만큼 체공시간이 길고 농구 선수만큼의 높은 점프력을 가지게 되면서 청소년 대표로 발탁된다. 게다가 국가대표에서 웨이트 트레이닝까지 접하게면서 당대 최고의 피지컬을 가진 선수로 거듭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정용환은 일본과의 원정경기에서 일본 공격진을 침묵하게 했을 뿐 아니라 선제 중거리포까지 터트리면서 대한민국을 32년만에 본선에 올라갈 수 있게 만든 1등 공신이었다. 본선에서도 당연히 그는 대한민국 대표팀 수비의 축이었다. 조별 예선 3경기를 풀타임으로 뛰면서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콘티의 이탈리아의 공격수들과 맞서 싸웠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정용환 (대우 로얄즈)

 

 

당시 웨이트를 하면 몸이 느려진다는 어리석은 무지로 인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안하던 한국축구에서 정용환은 전무후무한 대한민국 최고의 수비수였다. 하지만 최고의 수비수다 보니 청소년대표, 아시안게임, 올림픽, 월드컵까지 많은 국가대항전을 뛰면서 정작 프로축구에서는 2년간 5경기밖에 뛰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대항전에서 언제나 그는 대한민국의 캡틴으로써, 또 수비의 중심에서 맹활약을 했다. 2회 연속으로 올라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벨기에전에 출장해 최선을 다했다.

 

이탈리아 월드컵을 끝으로 프로팀에만 매진한 정용환은 한국프로리그의 모든 상을 거의 다 휩쓸다시피 하면서 명실상부 1980년대 한국 축구의 최고의 수비수로 거듭났다. 1992년에 들어서야 진로방해로 인한 첫 경고를 받았을만큼 강력한 수비수임에도 신사적인 플레이로 유명했다. 1994년 35세의 나이로 3번째 월드컵에 도전했으나 그의 발목은 많은 점프와 헤딩으로 최악에 가까운 상태였다. 결국 그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탈락하고 은퇴로 이어진다. 은퇴 이후 유소년 지도자로 활동하다 위암으로 2015년 6월 7일 타계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박정배 (대우 로얄즈)

 

 

박정배는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1994년 미국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득점자로 유난히 이름이 많이 불렸던 선수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치욕적인 1득점 3패를 당하고 의기소침해진 대표팀은 1980년대 스타 플레이어까지 모두 사라지면서 최약체를 평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는 맞게 된 아시아지역예선 첫 경기는 당시 가장 까다로운 상대인 이란[각주:1]전이었다. 침대축구로 이어지면 골치 아플 첫 경기에서 박정배가 경기 초반 선제골을 넣어버리면서 결과적으로 3대0 대승을 이끌게 되었다. 그 후 사우디, 일본 전에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면서 앞선 3대0 승리는 마지막 도하의 기적을 만드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악착같은 맨마킹 능력으로 유명했던 박정배였기에 김호 감독은 각 팀의 에이스를 박정배에게 맡게 된다. 하지만 스페인 전에서 훌리오 살리나스, 독일 전의 위르겐 클린스만을 모두 놓치면서 모두 실점을 주게 되는 아쉬움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다행히 후반 황선홍의 선제골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는 장면을 보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민성 (부산 대우 로얄즈)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송재익 캐스터의 익살맞은 함성이 터졌다.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1대0으로 지고 있던 일본에게 서정원의 동점골 이후 잊을 수 없는 이민성의 중거리슛은 당시 월드컵 본선 승리 그 이상의 감격이었다. 어린 축구팬들은 수비수였던 이민성을 공격수로 착각할만큼 임팩트가 엄청난 골이었다. 본선 3게임을 풀타임으로 뛰었지만 모두가 아는바와 같이 많은 실점을 허용하며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

 

김남일 (전남 드래곤즈)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때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루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그의 투지를 보고 대표팀에 발탁했다. 하지만 좋지 않은 볼 터치 능력과 거친 플레이는 약이 되고도 독이 되기도 했다. 컨페더레이션스컵과 체코와의 원정경기에서 참패를 당하자 투박한 김남일보다는 청소년대표팀의 김도균이나 기술이 좋은 윤정환을 발탁하라는 팬들의 원성이 많았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강한 투쟁심으로 인한 적극적인 사고를 마음에 들어 했고 결국 꾸준히 기회를 얻으면서 마지막 열린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지네딘 지단을 맨마킹으로 모두 막아내고 박지성의 동점골을 만들어주는 환상적인 패스를 어시스트했다. 본선이 되자 히딩크의 3-4-3 포메이션에서 김남일은 없어서는 안될 최고의 마스터피스였다. 안그래도 사기가 오른 한국팀에서 터프한 대인방어와 빠른 스피드, 창의적인 플레이로 대한민국을 4강으로 이끌었다.

 

김남일이 부상으로 교체된 스페인전 부상으로 나서지 못한 독일전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면서 얼마나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그가 큰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김남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

 

 

핌 베어백때도 김남일의 존재감은 2002년과 마찬가지였다. 창의적이고 허슬한 플레이로 대한민국에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선수였다. 2002년에 이어 더욱 경기력이 향상된 김남일은 협동 수비로 인한 수비에서의 영향과 미드필더 빌딩 후의 공격전개까지 공수에서 모두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김남일이 빠진 경기와 뛴 경기의 차이가 확연하게 차이가 날 정도로 핵심자원이었다.

 

프랑스전과 스위스전에서 풀타임 출장을 했으며 토고전에서는 후반 23분 이을용과 교체되어 그라운드를 누볐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김남일 (톰 톰스크)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김남일의 임무는 지난 2번의 월드컵과는 달랐다. 기성용, 김정우, 구자철 등의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를 뒷받침 해주는 베테랑 백업 미드필더의 역할 정도였다. 그는 북한과의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며 엄청난 실수로 인해 국가대표에서 멀어졌으며, 이때 주장이 김남일에서 박지성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월드컵 진출 확정 후에나 1년만에 플랜B를 실험하기 위해 국가대표에 복귀하게 되었다.

 

첫 원정 16강에 진출하게 된 대표팀이었지만 김남일의 평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조별 예선 마지막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백태클로 인한 동점골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앞선 경기력으로 승기를 잡고 있던 상황이라 난데없는 백태클 후 페널티킥에 벙쪘고 다행히 무승부로도 16강에 올라갈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사실상 앞선 2번의 월드컵의 영광이 한번에 날라갈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김영권 (광저우 에버그란데)

 

 

괜찮은 수비력과 빌드 능력을 지녔지만, 유난히 큰 경기에서 실점을 하는 김영권이었다. 지역 예선까지만 맡겠다던 최강희호 시절 수비 위치 선정미스로 호주와의 평가전에서의 동점골의 빌미를 제공했으며, 지역 예선 이란전에서 결정적인 실수로 이란의 유일한 슈팅을 허용했고 그 슈팅으로 인해 0대1로 패배하게 되면서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그의 최악의 경기는 조별 예선 알제리전. 어렵다던 러시아전에서 1대1로 비기면서 알제리전의 승리가 필요했던 대한민국 대표팀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이슬람 슬리마니를 막지못하며 선취득점에 일조하였고, 2분만에 다시 마크맨을 놓치며 추가실점, 세번째 실점 상황도 홍정호와 동시에 공만 바라보며 역할분담이 하나도 안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김영권은 '자동문'이라는 불미스러운 별명이 붙게 되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윤영선 (성남 FC)

 

 

 

윤영선의 대표팀 승선은 실력을 떠나 2부 리그에 있는 성남 FC의 선수가 대표팀 발탁이 되었다는 것에도 작은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이미 국가대표팀에서 인증이 된 상황이었다. 2017년 EAFF E-1 챔피언십 일본전에서 장현수와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였으며, 2018년 국가대표 평가전인 자메이카전과 교체투입된 폴란드 전에서 불안한 수비진을 잘 조율해냈다.

 

신태용 감독이 국가대표팀에 선임된 이후로 신태용의 페르소나라는 별명만큼 신태용의 수비전술에 가장 잘 맞는 선수로 거듭났고 이에 어려운 수비진 경쟁을 뜷고 대표팀에 최종발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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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시만 해도 사우디 아라비아는 중동의 신흥강호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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