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 등번호사 :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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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서 등번호 2번은 투지 있는 오른쪽 풀백이나 윙백이 맡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봤을때 2번을 달고 월드컵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바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명단을 자세히 살펴보면 80년대 후반 박경훈이 있었고, 1998년에 최성용이 있었고, 2006년에는 김영철이 있었다. 모두가 눈에 띄는 플레이어들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수비를 때로는 벤치에서 대기멤버로 든든하게 지켜준 선수들이다. 오늘은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 등번호 2번에 대한 역사를 알아보자.

 


 

1954년 스위스 월드

 

박규정 (육군 병참당 축구단)

 

박규정은 우리나라 월드컵 사에서 최고령 선수로 기록이 되어 있다. 인터넷 위키백과에서는 1924년생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월간축구 1971년 8월호 인터뷰에서 1955년 선수 생활을 은퇴했고 당시 나이가 41세라고 명시한 점으로 보아 1914년 생이 맞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당시 월드컵 출전을 39세 2개월의 나이에 헝가리 전에 출전하면서 최고령 선수[각주:1]로 기록이 되어 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박경훈 (포철 아톰스)

 

 

우리에겐 은발을 휘날리는 감독님으로 더 잘 알려진 박경훈은 포항 스틸러스의 레전드이자, 포항 스틸러스 초대 명예의 전당 현액자다. 1980년에 국가대표로 선발 되어 당시 변병주와 함께 가장 빠른 선수 중 하나로 오버래핑 능력이 뛰어났다. 당시 대표팀의 최강희와 같은 포지션이었는데, 최강희가 수비적인 오른쪽 윙백을 맡고 있었다면, 스피드를 이용한 오버래핑의 박경훈은 좀 더 공격적인 선택이었다. 결국 이러한 능력을 인정받아 조별 예선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이탈리아 전을 모두 풀타임으로 뛰면서 오른쪽에서 활약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박경훈 (포철 아톰스)

 

 

박경훈은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마치고 다음 월드컵인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당연히 대표팀에 승선을 했다. 후반 23분 즈음 교체된 스페인 전을 제외하면 조별 예선 전 경기를 출장했다. 그만큼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축구의 오른쪽 윙백은 박경훈이 도맡아 했음을 알 수 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정종선 (현대 호랑이)

 

 

현재는 언남고 축구 감독인 정종선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당시 연세대 1학년을 마치고 포철 아톰스에 입단했으나 축구에 열정을 전혀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2군으로 내려가자 이태원에 카페를 차려 유흥가 사장까지 하면서 방출되었다. 하지만 운 좋게 국군체육부대로 입대하면서 다시금 축구에 열정을 가져 현대 호랑이로 재입단에 성공했다.

 

하지만 독일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치고 현대로 부임했던 차범근 감독과의 사이는 매우 좋지 않았다. 한 에피소드로 런닝을 하라는 차범근 감독의 지시에 뛰지 않고 결국 산책하는 정도로 그치기도 했다. 당시 정종선은 이적을 요구했지만 차범근 감독은 이적 불가 방침을 내렸기에 이런 기행을 한 것이다. 하지만 정종선의 재능만큼은 뛰어났다. 결국 김호 감독의 부름에 미국 월드컵 국가대표로 발탁이 된 것이다. 정종선은 마지막 독일 전에서 월드컵 첫 출장을 하게 된다. 전반 37분 위르겐 클린스만으로 부터 3번째 골이 터지자 전반 40분에 미드필더 이영진을 빼고 수비수 숫자를 늘리기 위해 출전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최성용 (상무 축구단)

 

 

신생구단 대전 시티즌으로의 이적을 피하기 위해 최성용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상무로 입단한다. 최성용은 윙백이지만 대인마크 능력에 매우 뛰어났다. 특히 한일전에서 일본 에이스 차단 능력은 최고였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마에조노 마사키요를, 다음 지역 예선에서는 나카타 히테토시를 그림자처럼 막아냈다. 이런 부분이 꽤 좋은 평가를 받아 월드컵 이후 김도훈, 하석주와 함께 코리안 삼총사로 비셀 고베에서 활약하기도 한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최성용은 당당히 주전 자리를 꿰차며 하석주와 더불어 차범근 감독의 주요 전술 루트 중 하나로 작용했다. 하지만 모든 전술에 맞는 만능 플레이어는 아니어서 멕시코 전에서는 하석주의 퇴장한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김도근과 교체가 되어 첫 출장을 했고, 네덜란드와 벨기에 전에서는 주전으로 출전했으나 네덜란드 전은 수비 강화를 위해 김태영 선수와, 벨기에 전에서는 반대로 공격 강화를 위해 고종수 선수와 교체 되었다.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

 

현영민 (울산 현대 호랑이)

 

 

주전 오른쪽 윙백인 2번을 달았던 현영민이지만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같은 포지션에 이영표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2004년 아시안컵 대표로 잠시 선발 되었을 뿐, 김동진, 김치우라는 경쟁자들에 밀려 대표팀에서는 그 후로 큰 운이 없었다. 2017년까지 선수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하며 2002년 멤버 중 가장 마지막까지 현역 생활을 한 선수가 되었다.

 

현영민은 주력이 강한편도 개인기가 좋은 편도 아니었지만 뛰어난 체력과 활동량으로 그 단점을 커버했다. 특히 그의 최고 장점은 롱 스로인으로 긴 버거리와 더불어 정확도도 꽤 뛰어났다. 후에 히딩크 감독의 자서전에 의하면 월드컵에서 한 가지라도 경쟁력있게 잘하는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현영민의 스로인 능력을 높게 사 대표팀에 발탁했다고 썼다.

 


 

2006년 독일 월드컵

 

김영철 (성남 일화 천마)

 

 

영광의 2002년이 끝나고 국민들은 다음 월드컵 역시 큰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2002년 부동의 쓰리백 '최진철-홍명보-김태영'이 모두 국가대표를 은퇴한 상황에서 난감한 수비력이 걱정되었다. 김진규가 떠오르는 수비의 핵이었지만 아직 그는 어렸고 좀 더 안정감 있는 수비수가 필요했다. 결국 대표팀은 은퇴를 선언한 최진철을 다시 대표팀으로 발탁하고 성남의 김영철을 발탁하게 된다. 국가대표 경력이 거의 없는 김영철이 었으나 각 평가전에서 최진철과 좋은 안정감을 보여 최종 엔트리에 발탁되지만, 결국 1차전인 토고 전에서 실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오범석 (울산 현대)

 

 

지난 글에서 1번을 단 선수 중에서 최인영이 많은 질타를 받았다면 2번을 단 국가대표 중에 최악의 질타를 받은 선수가 바로 오범석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었지만 그 자리에는 차두리가 있었다. 수비 능력에서는 오범석이 뛰어났지만 피지컬에서 차두리를 이길 수 없었다. 결국 그리스 전에서는 차두리에 밀려 출전하지 못했으며, 그리스 전은 2대0으로 대한민국이 완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문제의 2차전 아르헨티나 전에서 허정무 감독은 차두리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오범석을 출전시킨다고 했다. 그리고는 당시 아르헨티나의 앙헬 디 마리아, 리오넬 메시, 카를로스 테베즈를 하나도 막지 못하고 모조리 뜷리면서 4대1 패배의 원인을 제공했다. 물론 당시 허정무 감독의 전술과 더불어 오범석이 아니라 마이콘도 막을 수 없는 리오넬 메시를 오범석이 막을 수 없었다는 평이 있지만 그래도 당시의 참패로 인해 가루가 되도록 까였던 선수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김창수 (가시와 레이솔)

 

 

우측 풀백에 100m를 12초에 뛰는 스피드와 활동량 그리고 꽤 정확한 크로싱이 무기인 김창수는, 볼 간수, 패스 공급, 왼쪽 수비가 가능한 능력까지 가지고 있는 선수다. 특히 2011, 2012시즌에 팀에서 맹활약을 하며 런던 올림픽에 와일드 카드로 승선하게 된다. 하지만 8강 영국전에서 넘어지면서 부상으로 아웃되어 오재석으로 교체가 되고 4강 브라질 전에서 네이마르-마르셀루라는 최정상급 라인에 오재석이 털리자 김창수의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홍명보 감독에서도 김창수를 발탁했다. 하지만 이용과 꾸준히 주전 경쟁을 하다 결국 본선에서는 이용에게 밀려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

 

이용 (전북 현대 모터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대표팀의 졸전으로 많은 질타를 받았던 이용은 다음해에 상무로 이적하고, 제대 후 전북과의 트레이드로 전북으로 이적한다. 공교롭게도 트레이드 대상은 울산 현대의 김창수. 작년 3월 오랜간만에 대표팀에 재발탁이 되었으나 2016년 수술한 스포츠 탈장이 재발하면서 재수술에 들어가 오랫동안 재활 치료에 들어가게 된다.

 

2018 시즌에는 다시 회복에 성공하며 전북에서 최철순과 주전 라이트백 경쟁을 하게 된다. 빠른 오버래핑과 크로스 능력을 주무기로 같은 팀의 최철순과 제주의 박진포 등을 제치고 고요한과 함께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하게 된다. 고요한은 콜롬비아 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뛴 경력이 있어 다양한 상황을 위해 벤치에서 대기할 가능성이 높아, 오른쪽 윙백은 이용이 주전을 맡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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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지만 당시 역사적 상황을 비교해봤을때 6.25 전쟁으로 인해 젊은 선수 육성의 맥이 끊겨 일제 강점기에 활약한 선수로 이루어져 만들어진 기록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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