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 on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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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시간이 정말 많이 지났습니다만 S.E.S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이야기할까 합니다.

 

당시 '노래는 좋은데 뭔가 어려운 누나' 였던 이소라나 '군대 간 사촌형이 좋아하던 누나' 였던 엄정화 같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모습을 드러내던 90년대 중반을 거쳐 H.O.T의 성공 뒤에 1997년 11월 발표된 곡인 ('Cause) I'm Your Girl (이하 I'm your Girl) 은 엄청난 비주얼 쇼크였고, 초·중학생들은 새롭고 상큼한 느낌의 '누나들'에 열광했습니다. 그렇게 S.E.S는 I'm your Girl과 후속곡인 Oh My Love로 연타석 홈런을 치며 한국 차트를 평정하고 두 번째 앨범을 내며 일본 진출을 선언합니다.

 

S.E.S의 일본 진출에는 일본 쪽 많은 스태프들이 관심을 보였고 개중엔 당대 일본 최대 히트 걸그룹 SPEED를 만들어낸 이치지 히로마사(伊秩弘将)나 모닝구 무스메의 아버지 츤쿠(つんく♂), My Little Lover를 띄우며 소니에서 독립 레이블을 할당받은 고바야시 타케시(小林武史) 등 기라성 같은 같은 이름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S.E.S의 일본 협력사는 SPEED의 라이징 프로덕션, 모닝구의 업프론트, My Little Lover의 소니 뮤직도 아닌 스카이 플래닝(현 스카이 코퍼레이션. スカイコーポレーション)이었고, 스카이 플래닝은 다들 아시다시피 그렇게까지 큰 기획사는 아니었지요. 배우, 모델 위주로 꾸려나가던 이 기획사의 당시 밥줄은 비비안 수, 혼마 유지를 비롯한 배우진이었습니다. 그나마 가수 쪽 활동은 미즈키 아리사나 비비안 수 정도였는데, 여기서 불협화음이 생깁니다.

 

편집장이 소장 중인 S.E.S 일본 8cm 싱글 (사진=황색언론)


첫 번째로 같은 소속사의 비비안 수가 가수로 성공한 것에 대한 자만입니다.

 

이는 당대 잘 나가고 지금도 엄청난 입지를 가진 거물 개그맨 듀오인 웃쨩난쨩의 우리나리!!(ウッチャンナンチャンのウリナリ!!) 라는 전국구 예능 프로그램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예능프로에서 냈던 첫 유닛 포켓 비스킷츠 (POCKET BISCUITS)의 곡 YELLOW YELLOW HAPPY는 170만 장이 넘는 대 히트를 쳤고 비비안 수가 참여한 라이벌 유닛인 블랫 비스킷츠는 200만 장을 넘게 팔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레이블인 BMG 재팬과 도시바 EMI의 능력이고 냉정히 말해 여기서 스카이 플래닝이 기여한 것은 없습니다.

 

비비안 수가 참여한 블랙 비스킷츠는 2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사진=구글)

 

두 번째로 레이블입니다.

 

일본의 레이블은 단순 국내 기획사나 유통사와는 차원이 다른 영역을 자랑합니다. 타이업 홍보부터 스케줄 관리, 팬 이벤트 등등 많은 영역에 관여하기 때문에 사실상의 기획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야 그런 건 기획사가 대부분 맡고 유통사는 아무 데서나 내도 살 사람은 사니까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일본서 SM이 제휴한 레이블은 소니 뮤직이나 에이벡스가 아니라 지금도 큰 규모라고는 할 수 없는 레이블이자 오히려 '소속 그룹들이 나간 후에 잘 나간 경우가 더 많은' 일본TV(닛테레)의 산하 기업 VAP였습니다.

 

그나마 S.E.S와 스카이 플래닝의 행운은 당시 한참 떠오르던 젊은 작곡가인 시마노 사토시(島野聡)와 작업했다는 사실입니다. 시마노 사토시는 1998년 여성 솔로가수 MISIA의 데뷔곡 つつみ込むように... 를 히트시켜 당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곡가로 이 곡이 수록된 MISIA의 데뷔 앨범은 250만 장을 넘게 판매하는 메가 히트를 기록합니다. 시마노 사토시는 S.E.S의 일본 앨범에 많은 관여를 하였고 후일 つつみ込むように는 '감싸 안으며'라는 제목으로 S.E.S의 네 번째 앨범 'A Letter From Green Land'의 타이틀곡이 리메이크되기도 했지요. 지금 단언할 수 있는 건 최소한 곡은 나쁘지 않았고 미들 템포나 R&B가 대세였던 세계적인 음악 트렌드를 잘 따라갔다고 생각합니다.

 

つつみ込むように는 4집 감싸 안으며로 리메이크 되었다. (사진=구글)

 

아마 스카이 코퍼레이션에서는 한번 성공한 비비안 수처럼 예능에 출연시키면서 브레이크 하길 노렸겠지만 그러기엔 비비안 수에 비해 S.E.S의 음악 실력이 너무 좋았기에 이건 실패했습니다. VAP도 소니 뮤직 이후 차선책으로 선택한 레이블이나 소니 뮤직만한 프로모션을 할 수는 없었고 뒤늦게 에이벡스와 계약했지만 이미 그저 그런 걸그룹이 되어버린 이미지를 돌이킬 수는 없었지요.

 

그렇게 SM 엔터테인먼트는 S.E.S의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며 확실한 레이블일수록 확실한 프로모션과 홍보 쪽에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 급성장하던 에이벡스(Avex)와 2000년 11월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합니다. 그 후 2001년 5월에 보아(BoA)가 에이벡스에서 첫 싱글인 'ID; Peace B'로 CD 데뷔를 하고 에이벡스 전속 작곡가 유닛인 BOUNCEBACK이 제공한 Amazing Kiss로 오리콘 차트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S.E.S가 못다 피운 꽃을 피웠다는 느낌이지요.

 

쇼비즈니스의 영역은 정말 예상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 준비해도 다른 곳에서 불운이 닥치거나 어떻게 크게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도 운 좋게 인기를 얻기도 하며, 정상의 자리에 서 있어도 어떻게 다른 문제로 내려올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같은 문화권 내의 연예계열 진출은 고려할 게 정말 많고 가끔은 그 국가의 스타일에 맞춰야 할 때도 있지요. S.E.S의 시대도 이젠 지나갔고 '일본 한류 아티스트의 이모' 같은 느낌도 있지만, 그 힘겨웠던 시행착오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K-POP문화는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올해 5월 오사카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트와이스 콘서트, 그 때의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지금의 케이팝 문화가 있는게 아닐까. (사진=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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