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영 추악한 몰락

반응형
반응형

장학영한 프랜차이즈 스타는 일순간에 범죄자로 몰락했다. (사진=구글)

 

거스 히딩크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둔 대한민국 축구팀에게 포백을 이식시키려 무던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베테랑 수비수도, 흡수력이 뛰어난 젊은 선수도, 유소년 시절부터 프로팀까지 늘 쓰리백만 지향해온 한국축구에게 조직적으로 라인을 맞춰가며 공수 양측으로 움직여야 하는 포백은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결국 김태영-홍명보-최진철의 쓰리백을 가동시키게 된다.

 

하지만 당시 유일하게 프로축구에서 포백을 구사하는 팀이 있었다. 바로 김학범 감독의 성남 일화 천마(現 성남 FC)였다. 실험적인 훈련과 전술을 구사하는 김학범 감독은 완벽한 포백라인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이 '철의 포백라인'이라 불리던 '장학영-김영철-조병국-박진섭'이었다. 초반 미숙한 플레이와 왜소한 신체조건으로 팬들의 불만이 있던 레프트백 장학영은 결국 실력으로 차경복 전 성남 감독 눈에 띄면서 데뷔시즌 16경기를 소화하고, 결국 김학범 감독 하에 철의 포백의 멤버로 자리잡게 된 것이었다. 당시 이영표, 김동진, 김치우 같은 많은 레프트윙 자원이 있어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던게 아쉬웠을 정도로 프로축구에서는 탑클래스급 레프트윙 실력을 보였다.

 

장학영장학영은 당시 프로축구에서 몇 안되는 포백 레프트윙 경력자로 국가대표까지 승선했다. (사진=구글)

 

또한 자신을 발굴한 안익수 감독이 부산 아이파크 감독을 맡아 잠시 부산 아이파크에 2년간 뛰었을때도 당시 성남에서 뛰던 후배 홍철에게 2014년에는 자신의 번호인 33번을 비워놓으라고 할만큼 친정팀 성남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깊었고, 성남 팬들 역시 '대장까치' 김두현과 더불어 성남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로 2017년 팬들은 아쉬움에 그를 보내주었다.

 

그러나 이 프랜차이즈 스타는 일순간에 몰락하고 말았다.

 

지난 9월 21일 아산 무궁화 FC의 이한샘 선수에게 5,000만원을 건네며 승부조작을 권했으나 용기 있는 이한샘 선수는 이를 거절하고 곧바로 신고하면서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에게 승부 조작 혐의로 체포되어 구속되었고, 이후 재판에 넘겨진 장학영은 징역 10개월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부산지법 장기석 판사는 "장씨 범행은 스포츠의 생명인 공정성을 무너뜨리고 프로축구 관계자와 팬들에게 깊은 불신을 안겨줘 결국 프로축구 발전을 크게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와 죄책이 무겁다"고 판결했다.

 

이한샘장학영의 승부조작제의를 거절하고 용기있게 신고한 아산의 이한샘 선수. 공교롭게도 이한샘의 33번은 장학영이 선수시절 늘 달고 있던 백넘버의 번호와 같았다. (사진=스포츠지니어스)

 

이후 밝혀진 배들의 증언으로 장학영은 이미 선수 시절부터 심각한 도박 중독 특히나 사설 토토에 빠져지냈으며, 연봉 2~3천만원을 받는 신인에게도 돈을 빌리는 등의 도박중독과 빚이 심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런 도박중독의 사유로 인해 이혼한 것까지 밝혀지기도 했다. 또한 승부조작이 있기 1달 전 인터넷 홍보 게시판에 대표팀 경력 선수치고는 매우 싼 회비로 축구교실을 연 것으로 보아 이미 도박에 대한 빚이 많았으며 이에 따른 결과로 브로커 일 까지 맡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이한샘 선수의 이런 용기 있는 일로 인해 한국 축구계는 다행히도 위험한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만약 장학영이 제시했던 승부조작이 실행되었다면 러시아 월드컵의 카잔의 기적, 아시안게임 축구 금메달로 인해 간신히 차갑게 등을 돌렸던 축구에 대한 관심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먼 길로 떠났을 수도 있을 것이며, 심지어 아산 무궁화 축구팀 해체 반대서명 운동을 하고 있던 이 때 승부조작이 걸렸다면 더욱이 아산 무궁화 축구팀은 재기할 수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장학영만약 조작이 실행되었다면 한국축구는 다시금 냉랭한 얼음길을 갔어야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끔찍할 따름이다. 성남팬뿐 아니라 이제는 한국축구팬들 조차 이 뒷모습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 할 것이다. (사진=아시아뉴스통신)

 

이번 사건으로 인해 26일 축구회관에서 대한축구협회는 승부조작을 제안한 혐의로 장학영을 영구 제명 처분을 내렸고, 이미 장학영은 선수생활은 은퇴했지만 이번 징계로 인해 지도자, 심판 등 대한축구협회가 관할하는 축구 관련 모든 직종에서 종사할 수 없게 되었다. 연습생 신분으로 입단해 왜소한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성남의 철의 포백으로 우승을 이끌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까지 활약했던 '연습생 신화' 장학영. 하지만 이제 그는 대한민국 축구 부흥를 망치려 했던 추악한 범죄자로만 기억되게 될 것이다.

 

황색언론에 있는 모든 포스팅의 저작권은 원 작성자에게 있으며, 사진 허락 없이 어떠한 형태로도 재생산, 복사, 배포될 수 없습니다.

Copyright ⓒ 황색언론 기사팀 yellow_news@naver.com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