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암흑기의 추억 ③ : 끝의 시작
- 황색스포츠/야구
- 2018. 3. 23.
시작의 끝, 끝의 시작
졸지에 사령탑을 잃은 롯데 자이언츠는 빠르게 기세가 추락하고 있었다.
선두권에 삼성 라이온스와 현대 유니콘스가 앞서가는 와중에 4강권 진입을 노리던 롯데는 삼성 감독을 역임했던 우용득 수석코치를 감독대행으로 맞았다. 우용득 감독대행은 삼성 감독시절 전임인 김성근이 분위기를 위축시켜놓은 삼성을 맡아 95년 삼성의 공격야구를 부활시키고 투수였던 이승엽을 타자로 전향시킨 전적이 있어 어느 정도 기대를 받았으나, 한번 틀어진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었다. 고질적인 약점이던 불펜은 박석진을 제외한 가득염, 강상수, 임경완, 김사율, 김영수가 모두 난조를 보였고 그만큼 박석진이 소화하는 이닝이 늘어만 갔다.
아직도 회자되는 호세의 배영수 폭행장면. 하지만 호세는 이 사건으로 잔여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음에도 홈런 2위, 타점 3위를 지킬만큼 호세의 타격은 막강했다. (사진=스포츠조선)
타선은 복귀한 펠릭스 호세가 0.335의 고타율을 보였고, 최기문과 김민재가 모두 3할을 기록하며 팀타율 0.280으로 8개구단 중 1위를 했지만 불펜진이 그만큼 흔들리는 상황에서 선발과 타선이 분발한들 그저 4강 진입을 향해 달리는 과정일 뿐 4강 문턱조차도 도달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마산 홈경기에서 펠릭스 호세가 삼성 선발투수 배영수를 폭행하는 최악의 사건이 터진다. 3할 타율에 36홈런 102타점(홈런 2위, 타점 3위)이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을 올린 호세가 출장 정지를 당해 시즌을 마감하게 된 상황에서 우용득 감독은 당시 경남고 출신의 투수로 입단한 신인 선수 이대호를 타자로 전향시켜 1군에 등록시키는 등 수습을 시도했으나 중심타선의 약화는 피해갈 수 없었다.
결국 신생팀 SK에게도 밀리면서 8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꼴찌팀이었음에도 커리어 하이를 맞은 포수 최기문과 기량이 만개한 조경환 등 젊은 피들의 선전에 힘입어 팀 타격 1위를 차지했었고 후반기엔 루키 이대호, 김주찬이 빛을 보았다. 선발진도 부동의 에이스인 주형광이 팔꿈치 부상에서 복귀한다면 충분히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대로 암흑기가 끝났으면 좋으련만, 끝이 아닌 시작이었을 줄은 그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2002 나비효과
FA를 앞두고 3할 타율을 기록한 김민재가 부담스러웠던 롯데는 SK로 보내버린다. 당시 롯데의 키스톤콤비 2루수 박정태-유격수 김민재 (사진=나무위키)
시즌 전 FA 김민재가 SK와이번스로 이적한다.
롯데엔 그래도 박기혁, 조성환, 신명철을 비롯한 신진 내야수들이 있었기에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국가대표 유격수 출신인 김민재를 보낼 수 있었고 보상선수마저도 골치아프다는 듯 현금만 수령하게 되지만 이 계약 하나로 시작된 잔잔한 파문은 나비효과를 부르듯 커져 롯데를 덮쳤다. 이는 이 모든 흑역사의 에피타이저에 불과했다. 큰 나무는 거대한 그루터기를 남긴다지만 김민재가 떠나버린 자리에는 그루터기조차 남지 않았고 내야의 구멍을 메꾸기엔 구멍이 너무나도 컸다.
펠릭스 호세와도 재계약을 맺어 연장계약에 성공한 최초의 용병타자가 되었으나, 당시 신생팀이던 메이저리그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이중계약 파동이 일어나 역시 역대 용병 최초로 KBO에서 영구 제명을 당한다. 시즌 시작 전 용병 영입부터 삐끗하며 초장부터 어긋난 롯데는 호세 대체 용병을 찾아야 했다. 타자로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중심타자였던 왕년의 슬러거 제로니모 베로아와 캔자스시티 로얄스 출신의 외야수 크리스 해처, 독특한 투구타이밍을 가진 대만 리그 출신의 대니얼 매기를 영입했다.
초반부터 조금씩 엇박자를 보이며 뚜껑을 연 시즌 초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호세의 이중계약 파동이 아니었다면 계약할 일도 없었을 제로니모 베로아는 달랑 11경기에 1홈런만을 기록한 채 퇴출당했다. 크리스 해처 역시 25경기 1홈런 5타점이라는 해도 너무한 성적으로 깔끔하게 시즌 초 퇴출당했으며 그나마 투수용병인 대니얼 매기만이 80이닝 4승 5패의 성적을 보여주었다. 먼저 퇴출된 베로아의 대체용병으로는 SK에서 잠시 뛰었던 호세 에레라를 데려왔고 에레라는 장타력이 좀 부족하긴 했으나 50경기 3할에 6홈런을 때려내며 선전했다.
용병들은 어떻게 구색까진 맞췄다고 해도 불펜, 타선, 수비는 여전히 골치아픈 문제였다. 김민재가 사라진 내야는 시즌 내내 덜덜거린 터라 충분히 혼란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준비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메꾸기가 만만치 않았다. 작년에 톱타자에 3루수로 중용되었던 김주찬은 지독한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었고, 신명철과 손인호는 여전히 터지지 않은 채 그 후로도 오랫동안 롯데 유니폼을 입고 침묵을 지키게 되었다.
호세의 대체자로 대려온 제로니모 베로아(왼쪽)은 11경기 1홈런만을 기록했다. 투수용병인 대니얼 매기는 그나마 4승 5패의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었다. (사진=구글)
박현승과 김대익 역시 작년에 비해 크게 부진했고 주포인 박정태마저도 작년의 부진을 설욕하지 못하고 야구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최초로 2군까지 내려가는 치욕을 맛보게 될 정도였다. 제 몫을 해준 건 베테랑 김응국과 조경환, 최기문 정도였다. 특히 조경환은 2002년 부진했지만 그래도 4년 연속으로 두자리수 홈런을 기록하며 주포 중 하나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몇 년간 엄청난 혹사를 당했던 '믿을맨' 박석진이 사라진 불펜은 강상수, 가득염, 김사율까지 모두 난조를 보였다. 게다가 김장현이나 김풍철은 시도때도 없이 나와서 사직구장 락커에 이불 깔고 사느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래도 엉망인 선발진에 비교하면 불펜이 차라리 나은 편이었는데 먼저 부동의 에이스 주형광은 토미존 수술 후 돌아왔지만 더 이상 절대적인 에이스가 아니었다. 재활을 마치고 나서도 확실한 재활을 요하는 토미존 수술의 후유증처럼 최대한 안정해야만 하는지라 풀 시즌을 소화해내기엔 무리가 있던 주형광은 원포인트 릴리프로 주로 등판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자취를 감추었으며, 그의 별명인 '아톰'처럼 하늘 높이 올라갔지만 그만큼 기나긴 내리막을 걷게 된다.
왕년의 국가대표 에이스였던 문동환은 99년 이후로 5승도 채 넘기기 버거웠다. 작년에 어느정도 버텨주던 젊은 선발 박지철은 수술받은 어깨 통증이 재발해 거의 등판했지 못했고 선발 로테이션을 지킨 손민한과 염종석 역시 잘 풀리지 않은 해였다.
시작 전부터 꼬이면서 선발은 어렵고, 불펜도 힘겹고, 용병농사도 반타작 이하, 타선까지 난조였던지라 이 무수한 나비효과들에 직격당해 시즌 전반기부터 일찌감치 최하위로 내려간 롯데는 6월에만 13연패를 당하는 수모 끝에 결국 6월 21일 우용득 감독을 해임하고 새 감독으로 백인천을 선임한다.
백인천, 아 백인천... (사진=구글)
그렇게 악몽인 줄 모르고 진행되던 2002 시즌 후반기는 악몽을 넘어선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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