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암흑기의 추억 ⑤ : 독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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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2002년 남발했던 무수한 무리수와 나비효과는 큰 폭풍으로 다가왔다. 개막 13경기동안 1무 12패를 시작으로 충격을 넘어 악몽같은 시즌의 서막이 올라온 것이다.

 

그래도 5월에는 그럭저럭 팀을 유지해가며 사상 최악의 초반 부진을 겪은 OB 베어스를 제치고 잠시 7위에 머무르던 롯데 자이언츠는 6월부터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물살을 탄 백인천 감독의 자기 입맛에 맞는 팀 개조계획은 용병농사의 처참한 실패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2년간 준수한 성적을 올린 신인 김주찬을 30-30도 가능한 선수라며 호언장담을 했고 이에 제2의 이승엽으로 만들겠다며, 타격 매커니즘의 개조에 들어갔다. 당시 블래스 신드롬[각주:1]으로 인하여 송구에 문제가 있는 유격수 김주찬을 어떻게든 외야수로 써먹어보려는 의도까지는 나쁘지 않았지만 어퍼스윙으로 교체된 그의 스윙은 허공만 갈랐고, 이전까지 보여주던 컨택조차도 사라진 채 3홈런, 1할6푼에 불과한 성적을 내고야 말았다.

 

김주찬을 파워히터로 만들겠다는 백인천의 시도는 그를 3홈런 1할6푼의 타율에 그치게 했다. (사진=마이데일리)

 

임재철의 유산이었던 외야수 이명호는 자리가 없고 단지 어깨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타자에서 좌완 사이드암 투수로 전향을 강요당해 2003년까지 투수로 활약하나 성과는 미비했고, 결국 백인천이 물러나고서야 다시 타자로 복귀하지만 타격감은 이미 사라져 결국 은퇴수순을 밟는다. 타자들은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같은 타격폼이 되었고 유망주 투수로 드래프트한 양성제와 변인재는 1군무대 경험을 쌓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혹사를 당해 어깨에 이상이 생겨 모두 빠른 은퇴를 했으며, 작년 2차 1순위로 뽑힌 신인투수 고효준은 제구가 안되고 심장박동이 불규칙하다는 괴상한 이유로 방출시키게 된다.

 

그렇게 방출당한 고효준은 2003년부터 10년 이상 SK의 중견급 투수로 군림한다.

 

베테랑들이라고 그리 성하지만은 않았다. 선수 겸 플레잉코치로 뛰며 좌타석을 책임지고 팀의 중심을 바로 잡아주던 큰형님 김응국은 어느새 40줄이 코앞이었고 출전기회는 점점 줄어만 갔다. 박정태는 FA 자격을 갖췄지만 롯데 자이언츠 구단에서는 2년 6억이라는 초 염가 헐값 계약을 강요했고 그나마 그 계약의 보장금액만 4억이었으며, 옵션 2억은 130경기 이상 출전과 3할 2푼, 80타점 이상이 조건이었다. 당시 전성기에 들어선 타자도 어려운 조건을 걸어놓고 도장을 찍으라는 파렴치한 구단 수뇌부의 강요에 박정태 선수가 버티기를 시전하자 구단은 괘씸죄 명목으로 FA 협상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정태와의 계약을 포기한다고 공식 발표 후 보도자료를 돌려버렸다.

 

같은 해 FA였던 고참 불펜투수 강상수 역시 FA미아가 될뻔했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롯데에서 제시한 염가계약에 사인을 했고 기량저하와 의욕부진이 겹쳐서 점점 내리막길을 걷는다.

 

 

결국 팬들에 항의에 FA계약에 성공한 박정태. 하지만 계약이 늦어진 탓에 스프링캠프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며 컨디션 난조에 시달린다. (사진=스포츠월드)

 

소속팀을 찾지 못해 FA미아로 강제 은퇴할 위기에 놓인 박정태였지만 부동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박정태의 계약에 롯데 팬들만이 아닌 타구단 팬들까지 가세해 격렬한 항의가 구단 사무실과 홈페이지에 끓어넘칠 듯 이어졌다. 결국 견디다 못한 롯데 구단은 결국 백기를 들고 FA협상기간 종료 하루 전에 박정태와 2년 6억의 계약을 맺는다. 감동적인 결과로 끝났지만 당장 선수로 뛰는 입장에서 자기 밥그릇을 위협당하고 계약도 늦어진 상황이라 박정태는 스프링캠프에도 늦게 되었고 특유의 근성으로 따라갔지만 부상을 당하면서 컨디션 난조로 시즌을 날리게 된다. 더욱 슬픈 상황은 롯데의 선수층이 너무 약한 나머지 어쩔 수 없이 박정태 선수는 부상 이후에도 개막 엔트리에 들었다가 주루플레이 중 부상을 크게 당해 몇 달간 재활을 하고 나서야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최악의 선수운영

 

기존의 부상전력으로 고생하던 선발 염종석과 주형광은 풀타임 선발의 몸상태에서 점점 퍼져가고 있었고 아예 주형광은 불펜으로 전업한다. 기존에 있던 선발과 불펜투수의 운영도 최악이었다. 어떤 날은 손민한이 갑자기 마무리로 갔다가 임경완이 갑자기 선발로 갔다가 이정훈이 오늘은 선발, 다음주 마무리, 몇 경기 지나서 난조하면 다다음주 계투로 등판하고 또 그 다음주 갑자기 선발 식으로 한 달에만 4번을 왔다갔다하며 보직도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주먹구구식 투수운영 속에 모든 투수들이 부진하게 된다.

 

백인천 감독의 사토라레 운영방식 (사진=구글, 편집=황색언론)

 

게다가 아무리 지난 시즌 2승 18패로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지만 귀하디 귀한 좌완 선발투수인 김영수를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는 어이가 날아가는 이유로 SK로 보내고 당시에 부상이 심하다고 소문났던 유망주 이용훈을 데려와서 상태점검도 없이 바로 마운드에 투입해 난타를 당하고 2군행으로 시즌을 마감하게 했다. 타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홈런 하나 쳤다고 갑자기 8번에서 4번으로 타순이 올라간 박연수같은 경우처럼 운용이고 관리고 죄다 내팽개친 전설의 선수관리를 보여주게 된다. 게다가 6회 넘어가서 이기건 지건 간에 좌타자면 가득염, 우타자면 노승욱, 평상시 임경완에 불안하면 변인재로 정해진 사토라레[각주:2] 불펜운용은 덤이다.

 

감독이 직접 데려온 사와무라상 수상자 출신 이시이 다케히로 투수코치는 마운드에 왔다갔다 하는거 빼고는 거의 하는 일이 없다시피 했고 이 팀이 대체 코치가 있는 팀인지 없는 팀인지 알 수 없었다. 코치들은 감독의 '내 말 들어' 야구에 뛰어든 이상 코칭과 조언을 하는 스탭이 아닌 그저 감독의 전령사에 불과했고 상기했듯 1번부터 9번타자, 대타요원까지 모두 똑같은 타격폼이었다. 그나마 프런트에서 계약한 용병타자 마리오 엔카르나시온(이시온)과 로베르토 페레즈가 중박은 되는 성적을 내주는 용병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패배를 당했을 것이다.

 

나쁘지 않았던 용병타자 마리오 엔카르나시온은 약물 과다복용으로 대만리그에서 활동 중 2005년 사망했다.

 

 

용병 페레즈와 이시온은 무너져가는 롯데에 그나마 한줄기 희망이었다. (사진=구글)

 

감독이라는 작자는 팀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파괴하고 총알받이 내보내듯 신인, 베테랑 할 것없이 망가트리는 데다 구단은 막 나가는 감독에게 제동은 걸지 못할 망정 돈 몇 푼 아낀답시고 말도 안되는 조건의 계약을 강요하거나 선수와의 계약을 포기한다고 동네방네 보도자료를 돌려버리니 팀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사직구장의 빈 자리는 점점 커져만 갔고 기존의 롯데 팬들은 잠시 야구를 끊는다거나, 타 팀을 응원하는 식으로 이리저리 빠져나갔다. 백인천 감독은 아예 야구는 관심도 없다는 듯 덕아웃에서 자거나 경기전 인터뷰엔 선수들이나 야구 얘기보다는 프로골퍼인 자기 아들 이야기를 늘어놓거나 골프스윙 보여준다고 자랑을 하고 선수들 몸 풀때 그라운드에서 퍼팅연습을 하는 등, 롯데팬들이 자발적으로 무관중 운동까지 벌이게 만드는 엄청난 처신을 보여준다.

 

이는 한·미·일 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며 아무리 자기 구미에 맞지 않아도 일부러 팀을 망치려고 작정하고 선수들을 혹사시키는 것이 선수들을 관리하고 육성하는 한 팀의 사령탑이나 지도자로 과연 합당한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개막 13경기 1무 12패를 시작으로 시즌 중후반부 기나긴 시즌 15연패에 내몰리자 그제서야 구단측에서는 2003년 8월 5일 백인천을 경질시키고 수석코치 김용철을 감독대행으로 승격시킨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39승 3무 91패라는 성적으로 2년 연속 90패, 3년 연속 최하위를 찍었으며 관중 수는 2년 연속으로 감소추세였다. 게다가 10월 2일 이승엽의 아시아 신기록 홈런인 56홈런의 홈런볼을 잡겠다는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관중석이 매진되는 기묘한 치욕까지 경험하게 되었다. 타격순위와 투수순위안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거의 없다시피했고 백인천은 퇴진하면서 롯데는 향후 15년동안 가을야구 못 할거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아니, 저주가 아닌 확인사살이자 확신이었다. 예로부터 호(好)시절은 짧고 암흑은 길다 하였다. 그렇게 롯데 역사상 가장 기나긴 시즌이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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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야구 선수가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등 제구력 난조를 겪는 증후군. 메이저리거 스티브 블래스의 이름에서 따온것으로 일종의 정신병. 스티브 블래스 신드롬, 혹은 블래스 증후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야수들의 송구불안 증세는 보통 입스(YIPS)라고 호칭한다. [본문으로]
  2. Satorare, サトラレ: 원작은 사토 마코토의 일본 만화.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속마음이 들리는 사람('사토라레')의 이야기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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