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힙합 物語 Vol.1
- 황색문화/음악
- 2018. 6. 14.
일본 힙합 모노가타리
物語(ものがたり/모노가타리): 한국어로 번역하기 약간 애매한 단어이나, 일관된 줄거리를 갖춘 이야기.
시부야(渋谷) 타워 레코드
필자는 길지는 않으나 일본에 거주했던 적이 있고 나이도 30대인 만큼 빠른 말로 쏟아내는 랩보다는 반주와 멜로디를 중시하는 록을 많이 좋아하는 성향이다. 밴드를 몇 년이나마 해 본 경험이나 입문 자체도 일본 록부터 입문했던 경력이 있는지라 요즘 애들의 '스웩(Sweg)'은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2Pac의 All eyes on me나 JAY Z의 Song cry 같은 곡은 좋게 들었고 Eminem의 Lose Yourself 같은 곡들이야 워낙에 유명한 곡 아닌가.
게다가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해보니 탑밴드보다 쇼미더머니나 언프리티 랩스타가 훨씬 성황인 한국에서 일본쪽 힙합이나 랩에 대해 의문점이 들어 당시 좀 유명하다던 MC나 그룹을 생각해보니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것에 비해, 자세히 아는 게 너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이유로 장르의 메카라고도 불리고 아직까지 헤비메탈을 하는 밴드가 존재하는 일본에서 힙합과 랩으로 이름을 얻은 양반들은 누가 있으며 그 역사와 특징은 어떠한가에 대하여 얕은 지식으로 겉핥기나마 한번 적어보기로 한다.
일본 힙합의 효시
실질적으로 시작이라 할 수 있는건 80년대 초의 사노 모토하루(佐野元春)나 요시 이쿠조(吉幾三)가 어떻게든 시도한 바 있고 그럭저럭 히트했다고 봐야겠지만 문화적 아이콘이나 파급력을 얻게 된 계기의 중심인물은 후지와라 히로시(藤原浩)라고 보는게 정설이다.
후지와라 히로시(藤原浩)
그는 지금은 일렉트로니카로 가버린 디제이 크러쉬(DJ Krush)와 더불어 일본 최초의 힙합 DJ라고 할만한 인물로 1983년 뉴욕에 머물며 힙합을 접했고 귀국 후 1985년 타이니 펑크(TINNIE PUNK)를 결성하여 초창기의 일본 힙합 씬의 기반을 다지고 비주류로 떠돌던 힙합을 메이저 장르에 입성시키게 된다. 거론된 이름들을 보면 유추할 수있듯 거의 댄서나 래퍼보단 DJ 위주의 활동이 주가 되어 왔으며, 이는 댄스음악에서 시작된 한국 힙합과는 달리 클럽의 DJ들과 함께 래퍼들이 성장하면서 시작하고 문화를 만들어 나간 미국 초창기 힙합씬의 성장과 거의 비슷한 편이다. 상기에 나열한 초창기 DJ들 중에는 힙합을 베이스로 유행의 변화에 따라 하우스, 트립합이나 유로비트 등의 새로운 길로 갈라져 TRF에 합류하는 DJ KOO(다카세 코이치)나 DJ Krush 등은 후에 일본 클럽튠이나 유로비트의 선구자가 된다.
1990년대 일본 힙합
물론 댄스로 시작한 그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후에 뉴잭스윙이 뜨던 1991년 ZOO로 데뷔하여 'Choo Choo Train' 이라는 히트곡을 남기며 후에 에그자일(Exile)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이가라시 히로유키(HIRO)나 TRF의 메인 보컬로 다시 얼굴을 비추는 키타무리 유키(YUKI)를 배출한다. 지금도 시부야 타워레코드나 대부분의 음반샵에 R&B나 힙합이 같은 부류로 묶어있는 걸 본다면 의외로 일본의 R&B와 힙합은 밀접한 관계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스챠다라파(スチャダラパ-)
'재미있는 랩, 편안한 랩'을 기치로 내세운 힙합그룹 스챠다라파(スチャダラパ-)가 1988년 결성되고 이들은 90년대초 DJ 언더그라운드 콘테스트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다. 지금도 현역인 미국의 드 라 소울(De la Soul)의 앨범에 참여해 유명세를 타기도 한 그 들은 1994년 플리퍼즈 기타의 한 축이었던 시부야케이 뮤지션 오자와 켄지(小沢健二)를 피처링으로 참여시킨 '오늘밤은 부기백(今夜はブギ-バック)'이 누계 50만장 이상 판매의 성과를 보이게 된다.
スチャダラパ- - 今夜はブギ-バック https://youtu.be/6lKTQbrM9RI
이 곡은 오리콘 15위 정도의 중박을 치지만 파급력은 의외로 강해서 일본에 콜라보레이션 붐을 일으키며 힙합이라는 장르를 오리콘 차트에 데뷔시켰고 역시 같은 해 8월엔 대중적으로 가장 히트한 힙합 싱글인 EAST END x YURI의 데뷔곡 'DA.YO.NE'가 일본 힙합곡 역사상 최초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대박을 친다. 그 후 1994-95년은 일본 힙합의 전성기로 볼 수 있는데, 앞선 가요계뿐 아니라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숨을 죽이다 모습을 드러낸 힙합 트리오 킹기도라의 첫 앨범 '하늘에서부터의 힘(空からの力)'이 발매되면서 90년대 일본 힙합 씬의 레퍼런스로 자리잡았고, EAST x YURI의 세컨드 싱글 'MAICCA'가 전작에 이어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연타석홈런으로 그 해 유행어대상에 노미네이트되면서 홍백가합전까지 출전하는 쾌거를 이룬다.
EAST x YURI
EAST x YURI - DA.YO.NE https://youtu.be/ZF99pK_go9g
Greatful Days
90년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80년대의 밴드 붐과 비주얼락의 강세, TK사단을 위시한 댄스뮤직과 유로비트의 장기집권기간이 바톤터치를 하듯 이어지던 90년대 후반에도 립 슬라임(RIP SLYME)이나 킥 더 캔 크루(KICK THE CAN CREW), 엠플로(m-flo) 등의 신진 팀들이 나타나며 명맥을 이어오며 숨을 고르던 중 홀연이 나타나 믹스쳐 록 밴드에서 힙합 컨셉으로 살짝 노선 변경을 한 드래곤 애쉬(Dregon Ash)의 명곡 'Greatful Days'가 1999년대 오리콘차트를 석권한다. 이 싱글의 히트는 일본힙합에서 굉장한 파급력을 가졌는데, 첫 번째로는 앞선 킹기도라의 일원인 ZEEBRA가 참여했다는 데서 신구세대의 조합이라는 의미가 있었고 (최근 일리네어 레코즈의 '연결고리'에서 가리온의 MC 메타가 참여한 상황과 비슷하다.) 두 번째로는 차트에서 같이 경쟁하던 상대들이 거장으로 거듭나고 있던 전성기적 라르크 앙 씨엘(L'Arc〜en〜Ciel)과 역대 일본 가요 역사상 가장 엄청난 데뷔앨범이라 칭송받던 'First Love'로 또 다른 국민 록 밴드인 GLAY의 앨범 최다판매 기록을 갈아치운 우타다 히카루(宇多田光)였던 것이다.
드래곤 애쉬(Dregon Ash) (모든사진=구글)
Dragon Ash - Greatful Days https://youtu.be/-fvT_mj_YM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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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팅거 햇필드 (前 조던 디자이너), 마크 파커 (나이키 CEO)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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