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회장님과 불매운동

반응형
반응형

빠에야(Paella)라는 스페인요리가 있다. 정확히는 그 요리의 이름이라기 보다는 요리를 만들때 사용하는 널찍한 프라이팬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한국의 뚝배기나 일본의 나베와 같은 작명이라고 보면 되겠다. 스페인의 발렌시아 지방에서 시작된 요리로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게 실은 꽤나 터프한 요리로, 원래는 야외에서 사냥으로 잡은 토끼나 꿩을 그 자리에서 널찍한 프라이팬에 만들어 먹던 요리이다. 토끼나 멧돼지, 꿩 등을 프라이팬에 볶다가 그 기름을 이용하여 쌀을 볶고 샤프란(Saffron / 향신료)을 섞은 육수를 부어 밥을 한 후 그 위에 해산물 등 부재료를 얹어 같이 찌듯이 익혀먹는 요리이다. 쌀도 씻지 않은 그대로 이용하여 쌀에 있는 전분가루를 활용하는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빠에야(Paella) (사진=Goya Food)

 

그런데 문제는 그토록 유명하며, 만드는 법까지 알고 있는 요리를 무우상은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는데 있다. 한 두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 가게가 너무 붐벼 다른 곳으로 옮긴 기억만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번쯤 먹어보고 싶은 리스트에 올라있는 요리이다.

 

무우상의 출근길에 매일 지나가는 미스터피자 지점이 한 군데 있다. 어릴때 많이 좋아했던 브랜드이기도 하고, 한동안은 관심에서 멀어진 브랜드이지만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마주하다 보면 피자가 먹고 싶어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출근길마다 '오늘밤엔 피자를 먹을까' 하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늘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미스터피자에서 얼마전부터 신메뉴를 내놓았다. 이름하여 <씨푸드빠에야> '아니, 빠에야라니! 피자도 먹고, 빠에야도 먹어보고 일석이조겠는걸?!' 하는 생각에 꽤 군침을 흘렸다.

 

그러던 어느날 SNS에서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 피자를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무우상이 미스터피자의 신메뉴 이야기를 꺼냈다. 빠에야가 얹어진 메뉴가 새로 나왔고 그게 맛있어 보인다고. 그랬더니 다른 지인이 끼어들어 한마디를 건넸다. "그런데, 미스터피자는 불매해야 하는것 아니야?" 순간 머리속으로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1. 아 맞다. 미스터피자 회장이 최근 갑질 논란으로 시끄럽지

2. 그럼 미스터피자도 불매해야 하나?

3. 그렇지만 불매는 자신이 하는거지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데?

 

당시는 그냥 모른척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지만 그 대화가 무우상의 머릿속 한구석에서 풀지못한 매듭처럼 계속해서 남아있었다. 오늘 다시 출근길에 미스터피자 앞을 지나면서 그 일이 떠올라 조금 생각을 해보았다. '미스터피자의 회장 갑질 사태는 소비자가 불매운동을 해야하는 상황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게 효율적인 방식인가?' 등등에 대해서.

 

우선 생각나는 것은 가맹지점의 매출저하와 본사의 태도와의 관계였다. 내가 작지만 큰 돈을 모아 새로운 시작을 위해 프랜차이즈에 가맹을 신청해 미스터피자 XX점을 차렸다고 치자. 나날이 늘어나는 임대료와 줄어드는 수익 사이에서 얼마 남지 않은 생활비마저깎아가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데, 회장이 우리지점 또는 다른 지점에 갑질을 했다는 기사가 나가고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 소식에 화가 난 주민들이 평소에 사먹던 피자를 끊거나 단골들마저 다른 브랜드의 피자를 애용하는 등 불매운동이 벌어진다면, 내 생활은 더 힘들어질테고 임대료나 임금은 변하지 않을것이며 본사에서는 딱히 대응이 없을것이다.

어떤 방식이 합리적인 불매운동일까 (사진=국민일보)

 

쉽게 생각해본 결과는 본사 회장과는 일면식도 없을 확률이 높은 애꿎은 가맹점들만 피해보고 본사측에는 오히려 타격이 가지 않을것 같다. 뭐 주식하는 사람들이 팔아준다면 시가총액이 내려가 본사에서 뜨끔하는 경우도 생갈지 모르겠지만, 미스터피자는 단독상장주도 아니고 일반 소비자들이 미스터피자의 주식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도 않다.

 

  • 안그래도 갑질당해 어려운 지점들을 불매로 더더욱 압박하는게 과연 효과적인 대응방식일까.
  • 과연 지점의 매출저하가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고통스럽게 느낄만큼 타격이 될까.
  •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참고 구매하지 않는 운동이 과연 효과적인 운동방식인가.

 

비슷한 경우로 남양유업이 있었다. 대리점 및 판매처에게 밀어내기와 욕설 등 갑질을 저지른 상황이 뉴스가 되어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불매운동을 펼치고 있다. 나 역시 남양유업 제품은 구매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남양유업의 불매는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걸까. 오히려 애꿎은 판매처의 피해자들에게 2차피해가 가는 상황은 아닐까. 남양유업 판매처와 미스터피자의 결정적 차이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이 든다.

 

우리가마트에서 남양유업의 제품을 불매할때 그 마트에게는 미약한 손실이거나 손실이 없을 수도 있다. 내가 남양유업의 우유 대신 매일유업의 우유를 구매한다면 마트에는 손실이 없이 남양유업의 매출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미스터피자의 가맹점에선 기본적으로 미스터피자의 제품밖에는 판매하지 않으므로 불매의 영향이 프랜차이즈 본사에 닿기전에 우선 가맹점측에 너무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랜차이즈 업체에 대해서는 소비자의 불매는 비효율적이거나 불가능한 목표를 위한 돌진일까?

 

우리에게는 '총, 균, 쇠'라는 저서로 유명한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라는 학자가 있다. 그가 쓴 또 다른 저서 '문명의 붕괴'에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문명들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 숲이나 공기 같은 환경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석유회사 채굴업자 등을 효과적으로 압박하고 제제할 수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 대표적인 방안으로서 소비자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회사들을 견제하기 위해 대형 구매업체인 '아마존'이나 '이케아'등에 소비자단체가 압력을 가하거나 또는 대안적인 제품을 구매하는 방식[각주:1]으로 직접적인 구매자인 업체들이 해당업체에게 압력을 넣게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식이다.

 

무우상도 아직은 어떤 방식이 가맹점이나 직원들에게 불합리한 행위를 강요하는 회사들에게 효과적으로 제제를 가하고 더 나은 방식으로 변모하게 만드는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관성적으로 어떤 뉴스에 대응하여 쉽게 불매를 결정하고 주위에 강요하다 제 풀에 지쳐 포기하는 것보다는 보다 현명하게 효과적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고민하고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그리고 그 방식중에서는 대형 구매업체를 이용하거나 정부 및 정치인을 활용하는 방법 등의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고 연구해야만 할 것 같다.

 

이래저래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인으로 살아가는건 귀찮고 힘이 드는 일이다.

 

Copyright ⓒ 무우さん。


ⓒ 무우さん。

  1. 예를 들어 환경보존에 힘쓰는 업체들에게 Eco마크를 부여하고 그 제품을 선택구매하는 방식 [본문으로]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