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의 아이돌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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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 시즌 3의 우승자는 바비(BOBBY)였다. 베테랑 빌스택스의 건재함, 고(故) 아이언의 발굴도 있었지만, 역시 우승자 바비와 흑역사라도(?) 만든 비아이(B.I)는 이 프로그램이 다음 해 2015년 데뷔할 자신들의 그룹 아이콘(iKON)을 대중들에게 알리기에 좋은 발판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기획사와 방송국은 서로 간의 이해타산을 위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아이돌을 넣는 재미를 알게 된다.

 

다음 시즌인 4에서는 아예 본격적으로 프로듀서의 블락비의 지코를 필두로, 빅스의 라비, 세븐틴의 버논, 몬스타엑스의 주헌, 탑독의 키도, 야노, 원펀치의 원이 나왔다.

 

바비의 쇼미더머니 우승은 다음 시즌 많은 아이돌들을 참여시켰다. (사진=엠넷)

 

■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

 

많은 아이돌 참가자 중에서도 쇼미더머니 4의 송민호의 위치는 안타까웠다. 이미 지난 시즌 3에서 YG라는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이 우승을 차지했고 다음 시즌 역시 회사에서 송민호라는 카드를 내자, 래퍼 블랙넛이 2차 예선 랩 가사에 "많은 거 안 바라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라는 말을 조롱처럼 외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 이후 프로그램 내내 송민호는 괜찮은 무대를 선보였음에도 이유 없는 질투와 비난을 받아야 했고 송민호 역시 1차 경연 때 인터뷰에서 자신이 한 노력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의미로 들리기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

물론 쇼미더머니는 관객들의 투표로 우승자가 좌지우지되는 프로그램인 만큼 아이돌이라는 팬덤을 업고 관객 투표로 성적을 정한다는 것이 뮤지션들에게는 억울할 수 있는 입장이었고, 당시 본선 무대에 빅뱅의 태양을 피처링으로 쓰며 기울어진 무대를 만든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결국 앞의 한 구절은 송민호에 대한 고정관념과 트라우마로 꽤 오래 남게 된 사연이다.

 

그 뒤로도 쇼미더머니의 스핀오프로 나온 언프리티 랩스타(Unpretty Rapstar) 역시 AOA 지민, 시즌2의 시스타의 효린과 원더걸스의 유빈, 시즌3의 와썹의 나다, (여자)아이들 데뷔 전 전소연이 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캐릭터는 전부 한결같이 아이돌이라 무시당하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얼굴이나 알리자던 시작이 대부분 얼굴이나 반반한 조롱거리로 전락되자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아이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2021년 새로운 콘셉트의 서바이벌이 생겨났다.

 

언프리티 랩스타의 유일한 볼거리는 그나마 프듀옷을 입은 전소연의 디스 배틀이었다. (사진=엠넷)

 

■ 스트릿우먼파이터

 

스트릿우먼파이터, 일명 '스우파', 이전의 댄싱9, 힛 더 스테이지, 썸바디에 이은 네 번째 엠넷의 댄스 프로그램이지만 경연을 펼치던 예전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기 세고, 공격적이고, 최종 우승 크루를 가려야 하는 본격적인 배틀 서바이벌이 시작된 것이다. 프로그램 전부터 네임드가 있었던 YGX를 비롯한 8팀이 참가를 결정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6년 전과 똑같은 먹잇감이 등장했다. 아이즈원 출신의 이채연. 게다가 소속팀은 기존의 댄스 크루도 아닌 스우파를 위한 일종의 프로젝트성 크루 원트(WANT). 이채연이 참가자 모두를 압살하고 우승할 실력을 갖추지 않은 이상, 스트릿 댄스를 처음 접하는 시청자부터 프로그램 편집 의도까지 모두 이채연에게는 가혹할 수밖에 없던 시작이었다.

 

채연의 중압감은 대단했을 것이다. (사진=엠넷)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이 중국자본을 노리는 같은 방송국의 걸스플래닛 999까지 가볍게 제치고 10월 5일 현재 2.7%의 시청률로 나날이 치솟으며 대중들의 눈까지도 집중된 상황이었다. 이때 '스트릿 댄스'라는 문화를 처음 접하는 많은 시청자들은 그 주제보다 프로그램의 편집 흐름에 더 감정을 이입한다. 그러나 무대에 맞춰져 있는 이채연에게 시작부터 배틀은 너무 가혹했다. 그렇게 패배하게 되면 역시 '아이돌'이라는 트집이 잡히고, 미워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무대를 떠나 눈물 등의 모든 행동에 악플이 달린다.

 

쇼미더머니4가 송민호의 공격을 위한 편집이었다면, 스트릿우먼파이터는 이채연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나마 그 마음을 알아주었던 것은 파이트 저지로 참가한 이제 데뷔 21주년 차 가수 보아의 한 마디였다.

 

"저는 채연 씨 너무 같은 가수로서 당신의 패기에 내가 진짜 감동했습니다. 이제 와서 얘기하지만 너무나 큰 마음고생...  그리고 용기 또 팀원들에게 자꾸 짐을 주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많이 들었을 텐데 이 프로(그램)를 통해서 채연 씨의 춤에 대한 갈증? 갈망? 이런 게 고스란히 시청자분들께 전달되었을 거라 생각하고..."

 

채연의 마음을 알아주었던 선배 보아 (사진=엠넷)

 

■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자극적이라 맛있다

 

기성세대는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무서워한다. 사진을 영혼을 빼앗아 가는 기계라 생각했고, 만화책을 어린이날마다 불태우는 행사를 했고, TV를 바보상자라고 조롱했으며, 그놈의 셧다운제가 차단이 된 것은 2021년이 되어서다. 그렇기에 거부하는 문화는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자극적인 감미료를 바른다. 체육으로 치면 올림픽 같은 국가대항전이 될 수도 있고, 음악으로 치면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될 수 있고, 학문으로 치면 알기 쉬운 1시간짜리 TV강의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받아들인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였다면, 자극적인 감미료를 씻어내고 본질을 볼 필요가 있다.

 

무대를 함께 꾸며주는 댄서들에 대한 존중이 스우파를 보는 자세가 아닐까 (사진=엠넷)

힙합은 디스(Diss)가 다가 아니고, 여자배구는 올림픽만이 전부가 아니듯, 스트릿 댄스는 배틀 댄스가 주가 아니다. 심지어 스우파의 경우 모든 팀이 대부분 스승과 제자 사이며 같은 무대에서의 경력이 많은 동료 댄서들이다. 그런 친분이기에 이번 프로그램 역시 경쟁 자체에 흥분할 것이 아니라 노제, 가비, 리정 같은 멋진 댄서들을 알게 된 기쁨과 무대를 함께 꾸며주는 댄서들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한 존중을 가지는 것이 우선이다.

 

편집된 자극적인 경쟁 자체에만 빠져 시청자들이 열광하게 된다면, 방송국은 시청률을 위해 계속해서 물어뜯겨질 당신들이 지키고 싶은 아이돌을 서바이벌 무대 위에 세울지도 모른다. 언제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돌의 위치는 2014년부터 2021년까지 변함없이 조롱거리였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녀들은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건 편집된 영상에 입을 삐쭉거리는 당신들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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