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 도핑, 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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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스포츠선수가 성공하려면 운과 실력, 모두가 따라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고려대학교의 박한 감독의 명언처럼 "공격과 수비"가 잘 된다면 뭐가 걱정이겠는가. 하지만 실력지상주의 일색인 운동계에서 그 실력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늘기에는 어려운 것이 세상 일이다. 그래서 실력파 선수들은 대부분 노력가이며 각고의 노력 끝에 그만한 실력을 가지게 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대부분의 실력이란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늘어난다면 그 누구라도 대선수가 되어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의미로의 실력으로 이름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노력하지도 않았고 실력이 뛰어나지도 않았지만 이름을 남겼다. 그들이 보여주는 실력의 정체는 노력하지 않고도 내 손 안에 실력이 들어오는 위험한 거래, 바로 '도핑'이다.

 

노력하지 않고도 내 손 안에 실력이 들어오는 위험한 거래


한국 프로야구의 도핑 사례

 

국내프로야구의 도핑테스트는 테스트라는 개념조차 없이 시즌을 굴리다 결국 2000년대가 되어서야 정식으로 도입되었다. 그런고로 대부분의 프로야구 선수들은 도핑에 대해 둔감했고, 둔감한 만큼 빈번했으리라 예상된다. 고작해야 20홈런을 치거나 30홈런 고지에 닿으면 홈런왕을 차지하던 시절에서 갑자기 90년대 후반부터 40홈런, 50홈런을 너도나도 날려댄 걸 감안한다면 거의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받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외국인 용병 도입과 더불어 국내의 도핑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대다수다.

 

KBO에 진갑용과 박명환이 금지약물로 적발되었지만 처벌은 미약했다. (사진=구글)

 

KBO의 도핑 적발자 1호는 진갑용이었다. 삼성의 주전포수이자 국가대표 포수로도 이름을 날렸던 진갑용이었지만,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약물복용이 적발되었고 국가대표 엔트리에도 탈락하면서 야구팬의 지탄을 받았으나 구단의 벌금 200만원 징계를 제하면 리그 차원에서는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아시안게임 이후 2002년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을 수상하며 탄탄대로를 걸으며 삼성 라이온스의 주전선수로 이름을 남겼다는 사실과 후배인 김상훈을 자기 대신 국가대표에 발탁시키기 위해 도핑용 소변샘플에 약을 탔다는 이야기로 무마하려 들었다는 이야기만 회자될 뿐이었다.

 

그 후에도 박명환의 국제야구연맹 도핑테스트 적발 정도의 사건에도 유야무야 넘어가던 KBO였지만 2008년 제대로 망신을 당하게 된다. 바로 두산 용병 다니엘 리오스(Daniel Rios)의 약물복용 적발이었다. 직전해인 2007년 두산에서 230이닝에 22승을 올리고 MVP를 수상한 다니엘 리오스는 기세등등하게 일본프로야구의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했지만 부진을 거듭하다 결국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2008년 6월에 2군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불시 도핑테스트에서 스테로이드계 양성 반응이 나왔다. 스테로이드의 경우엔 복용 후 1년간은 거의 양성 반응이 나오므로 한국에서도 약물복용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이 사건으로 2007년의 영웅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비겁자로 추락했다.

 

22승 투수 다니엘 리오스의 약물복용 적발은 KBO에 큰 오점을 남겼다. (사진=구글)

 

리오스는 1년간 출장정지 징계를 받고 곧바로 방출되었으며 망신을 톡톡히 당한 KBO에서는 외국인 선수 대상으로 도핑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1년 뒤, 성적부진으로 방출된 삼성의 용병투수 루넬비스 에르난데스[각주:1]를 시작으로 꾸준히 도핑테스트에 적발되는 선수가 나오고 있다.

 

 

 

일본야구를 뒤집은 마법의 녹색 캡슐

 

2008년의 NPB의 불시 도핑테스트는 배리 본즈(Barry Bonds)와 로저 클레멘스(Roger Clemens)의 몰락을 불러온 2007년의 미첼 레포트(Mitchell Report)[각주:2]사건에 영향을 받아 실시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사실 일본프로야구 역시 2007년도까지 외국인 선수의 약물문제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편이었고 때문에 약물관련해서 이리저리 이름이 거론된 선수들만 30명에 육박했다. 이에 찬물을 끼얹고 NPB가 단호하게 도핑테스트를 실시하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2005년의 '그리니스 파문'이었다.

 

수수께끼의 녹색 알약 그리니스(Greenies) (사진=구글)

 

2005년 일본 주간지 '주간 아사히'에서는 '치바 롯데 마린즈 선수들이 마시는 수수께끼의 약물'에 대한 기사를 낸다. 90년대 후반부터 치바 롯데 마린즈 선수들 사이에서 '환경보호 운동가'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수수께끼의 녹색 알약이 유행했는데 이것이 암페타민 계열의 각성제나 마약의 일종인 엑스터시였다는 내용의 폭로기사였다. 이 기사에서 롯데 마린즈의 한 선수는 '피로가 줄고 집중력이 높아지는 효과 때문에 여러 선수들이 이 약을 상시복용했고 팀 성적향상에 도움을 주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역사에 대해 정통한 사람이나 도핑관련해서 연구해본 사람들은 '엑스터시'라는 이름으로 숨겨두었으나 효과의 색만 보고도 어렵지 않게 그 약물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암페타민 계열인 '그리니스(Greenies)'라는 각성제였다.

 

그리니스는 2차대전 당시 미군 병사들의 졸음을 방지하려 개발된 약이었지만, 전후(戰後)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곳은 전쟁터가 아닌 프로스포츠판이었다. 60년대 양키스의 명투수이자 말년에 너클볼러로 다시 재기한 것으로 유명한 짐 버튼(Jim Bouton)은 60년대엔 동료들이 그리니스를 복용했다며 폭로한 바 있다. 특히 80년대에서 90년대 중흥기에 그리니스가 대유행해 기존의 '암페타민 캔디'라 불리던 캡슐 대신 아예 클럽하우스에 그리니스가 들어간 커피포트와 일반 커피포트가 따로 준비가 되어있을 정도였다.

 

대다수의 선수들은 일반 커피를 마시듯이 아무런 고민도 죄책감도 없이 '메이저리그식 커피'를 마셨고 각성상태로 피로감을 느끼지 못한 채 경기에 나왔다. 뉴욕 타임즈의 스포츠 칼럼니스트로 유명했던 조지 벡시(George Vecsey)가 저술한 '야구의 역사(Baseball: a history of America's favorite game)'라는 책을 보면 그리니스를 복용한 신인 투수가 홈플레이트 근방으로 폭투를 뿌려 감독에게 쫓겨났다는 내용이 나온다.

 

너클볼러로 다시 재기했던 뉴욕 양키즈의 짐 버튼은 동료들이 그리니스를 복용했다며 폭로한 바 있다. (사진=뉴욕타임즈)

 

이런 기사가 나간 뒤 야구판이 발칵 뒤집혔다. 지바 롯데 바비 발렌타인 감독과 구단대표 세토야마 류조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기사 내용은 절대 사실이 아니라며 완강하게 부인하기도 했지만 기사를 낸 주간 아사히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사실이 아니라고 했지만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도 않았고 그를 부정할만한 근거조차도 없던 롯데 마린즈 구단은 기사가 점점 이슈가 되자 팀 내 외국인 타자인 베니 에그바야니의 선수등록을 조용히 말소시켜 세간의 궁금증만 키웠다.

 

2년뒤 2007년 2월에는 주간지 소학관의 '주간 포스트'에서 전 요미우리 자이언츠 투수인 노무라 타카히토(野村貴仁)의 증언을 토대로 '2000년 요미우리가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할 때 선수들 사이에 약물이 만연했다'며 폭로했다. 오릭스에서부터 좌완 계투로 유명했고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에 진출한 이후 2006년 각성제 사용이 적발되어 일본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노무라는 그 해 12월 법정에서 오릭스 시절에 같은 팀 외국인 선수의 권유로 그리니스를 복용하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이를 요미우리 동료선수들에게 나눠줬다고 고백했다. 노무라가 폭로한 요미우리 시절에 그리니스를 복용한 동료선수들의 이름은 이니셜로 처리되었지만 그 중 몇 가지의 정황은 명백히 당시 팀 동료이자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 마쓰이 히데키(松井秀喜)를 간접적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물론 이때도 역시 요미우리는 과거 롯데 마린즈가 대응한 것처럼 명백한 사실무근으로 거인을 시샘하는 세력들의 농단이라며 법적으로 대응할 뜻을 밝히기도 했지만 이는 역시 리오스와 더불어 같은 해 5월에 외인 루이스 곤잘레스가 불시 도핑검사에 적발되어 그리니스 의혹이 터지면서 요미우리의 이미지는 완전히 땅에 떨어져 일대 망신을 당했다.

 

각성제 사용이 적발된 前 요미우리 투수 노무라 타카히토는 오릭스 시절에 외국인 선수의 권유로 시작했으며, 나중엔 요미우리 동료선수들에게 나눠줬다고 고백을 해 일본 야구팬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진=구글)

 

게다가 갑자기 곤잘레스를 출전선수명단에서 제외시킨 뒤 1주일 전에 맞은 데드볼 통증으로 인하여 경기에 나올 수 없다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며 사건을 축소시키려 했다는 정황까지 드러나 요미우리의 대표가 공개 사과를 하는 치욕까지 당했으니 일본야구를 대표하는 구단의 대 망신이라고 밖엔 할 말이 없었다.

 

그리니스, 그 이후

 

한미일 야구를 통틀어 금지약물 복용 선수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적발된 선수는 베테랑 선수부터 신인 선수까지 개인 부주의나 고의 등의 다양한 이유로 복용사실이 적발되었고 가장 최근에는 2013년 WBC의 MVP를 차지한 올스타 2루수 로빈슨 카노(Robinson Cano)의 도핑이 적발되었다. 검출된 약물은 이뇨제였지만 대부분의 약물은 몸 밖으로 나가면 복용사실이 은폐되는 경우가 많기에 거의 금지약물을 빨리 소변으로 배출하기 위한 의도였다는 의심을 받았고, 실제로 도핑 프로그램의 감찰관과 MLB 사무국은 결국 카노의 도핑 은폐사실을 증명해내면서 80경기 출장정지의 중징계를 내렸다.

 

최근 도핑테스트에서 걸린 올스타 2루수 로빈슨 카노(右)와 약물적발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라이언 브론(左)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AFP)

 

이것으로 또 하나의 차기 명예의 전당급 슈퍼스타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몰락했고 과거 라이언 브론(Ryan Braun)이나 매니 라미레즈(Manny Ramirez)가 그랬던 것처럼 '슈퍼스타'가 아닌 '약쟁이'로 남게 되었다.

 

일본의 경우엔 2009년 고시엔 고교야구대회부터 학원야구판의 고등학생 야구선수들에게도 도핑테스트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일본야구나 메이저리그처럼 스프링캠프부터 시즌 종료 그 이후까지 아무나 잡아서 불시에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정도로 까다롭게 적용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학원스포츠 시절부터라도 도핑의 위험성과 그 경과를 이해시키는 노력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선수의 미래를 위해서 성적으로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성적을 위해서 선택한 약은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폐인으로 만드는 데다 그 쌓아올린 성적이 '약쟁이'라는 비아냥으로 변해 심하게는 목숨을 포함한 모든 걸 잃게 된다는 걸 알면 그때도 과연 도핑을 시도할 수 있을까?

 

스테로이드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켄 캐미니티 (Ken Caminiti) (사진=구글)

 

Copyright ⓒ K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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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특이하게 퇴출이 결정되고 나서 KBO에서 도핑 테스트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발표한 선수다. [본문으로]
  2. 미첼 前 상원의원이 2006년 3월 말부터 시작된 20개월간의 독립 조사를 거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버드 셀릭 커미셔너에게 제출한 보고서로, 흔히 미첼 리포트로 불린다. 2007년 12월 13일 발표되었다. 미 프로야구선수들의 약물현황에 대한 보고서로 당시 큰 충격을 주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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