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야구에도 치맥이 어울릴까: 센트럴리그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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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야구에도 치맥이 어울릴까?'

 

이런저런 이유로 일본에 거의 1년 가까이 살았던 적이 있다. 준비하던 일은 결과적으로 잘 풀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본에 거주하던 시절엔 워낙 주변에 놀거리 천지인지라 이리저리 많이 돌아다녔는데, 사실 아키하바라에서 이케부쿠로, 나카노 일대를 돌아다니는 덕후질은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오래 가진 않았다. 애초부터 일본 오기 전에 덕후 중 상덕후였고 웬만큼 희귀한 녀석들이나 희소성 있는 음반들이 아니면 북오프 털이나 나카노 브로드웨이 탐방을 어느 정도 돌면 웬만한 건 어떻게든 구할 수 있었던지라 오히려 흥미가 떨어져 있었다.

 

특히나 어릴 적에 단편적으로나마 듣던 곡들이 나이 들어서는 굉장히 허접하게 들리는 아쉬운 경험을 몇 번 하게 되자 음반쪽의 관심은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애니메이션이야 요새는 세상이 발달해서 웬만한 애니메이션은 생방송으로 볼 수 있는지라 흥미도 관심도 죄다 떨어져 이케부쿠로, 오챠노미즈 쪽 악기샵을 돌거나 가끔씩 부탁 받은 구매대행을 해주거나 하면서 휴일을 보내던 중, 집에 와서 롯데와 LG의 야구경기를 보던 중 갑자기 이대호가 등장하자마자 떠오른 게 있었다.

 

부산 사직구장 (사진=황색언론)

 

부끄럽게도 일본의 야구장을 거의 가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엔 일본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국적의 야구선수도 전무했었고 제대로 야구만 보려고 일본의 구장에 갔던 기억만 따지면 채 5번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기왕에 온 김에 야구나 좀 보러 갈까 하는 생각에 야구장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티켓값은 여전히 사악하지만 그래도 가기로 한 이상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까진 힘들어도 옆사람 옆구리라도 한번 찔러보고 가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야구보다 더욱 충격적인 게 있었으니 바로 먹거리였다.

 

야구 관람할 때 아무것도 없이 그냥 야구만 보고 앉아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선 주로 서울에서 부산, 광주까지 '치맥'이 가장 보편적이지만 일본이라는 나라가 워낙에 땅덩이도 크고 팀도 12개나 되니 이쪽은 그래도 각기 다른 느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행을 겸해서 일본 쪽 야구장을 다 돌아보는 걸 목표로 삼기로 했다. 일본은 확실히 먹거리의 천국이고 군것질거리와 맥주가 난무하는 나라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 양에 비해 가격들이 흉악하기 그지없으나 (이는 소식하는 일본인들의 특성상 어쩔 수가 없다.) 그 동안 야구를 보면서 사직구장, 잠실구장 가봐야 고구마스틱, 오다리나 한 두개 사오거나 퀄을 장담 못하는 비싼 치킨에 그냥 맥주 들고 대충 가던 것과 차원이 달랐다. 물론 요즘의 우리나라 야구장들도 웬만큼 좋아졌고 일본 수준을 많이 따라왔다고는 하지만 글쎄올시다. 귀국하고 나서 야구경기를 관람할 기회가 생겨서 가본 사직과 잠실을 제외한 몇몇 구장 중에서는 그나마 인천 문학구장이나 수원 KT위즈파크 정도가 아니면 아직까지는 좀 요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KT위즈파크의 외야 하이트펍은 가격대가 좀 세도 꽤 괜찮은 아이디어와 시설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평은 상당히 갈리는 편이다.

 

 


 

도쿄 돔 (東京ドーム)

 

도쿄돔 (사진=구글)

 

도쿄돔만큼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일본 구장은 드물 것이다.

 

애초에 굳이 야구가 아니고서라도 콘서트나 이런저런 행사로 도쿄돔을 가본 경우가 많긴 하지만, 순수하게 야구만 보러 간 것은 거의 처음이었는데, 애초에 그 놈의 '요미우리 부심'이란 건 워낙에 유명한지라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는 구단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 야구팬은 요미우리의 팬과 요미우리 팬이 아닌 사람으로 나뉜다고 했던가. 일본 있을적에 기거하던 집의 집주인이 요미우리 팬이었는데 그 아저씨가 거의 광빠 수준의 요미우리 팬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보편적인 경우인 부동산 업체에 딸린 관리업체를 통하지 않고 반쯤 직접 관리하시던 분이라 동네에서 가끔 마주치면 심심풀이로 둘이서 야구 관련 농담따먹기를 할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

 

야구를 보러 가기 전에 우연히 만난 집주인 아저씨에게

 

"저 야구 보러 갈려고 하는데 도쿄돔 표는 많이 비싼지 모르겠네요. 현장에서 구하기가 어렵습니까?"

"야구? 쿄진(巨人·요미우리)의 게임인가?"

"네, 이제 인터넷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라고 하니 아저씨가 잠시 생각하더니 지갑을 열어서 무언가 건네주었는데... 세상에나, 다음날 도쿄 돔 표였다.

 

가격은 무려 만엔 좀 덜 하는 포수 뒤 지정석 S!! 원래 일본 프로야구는 3월 되자마자 전 경기 예매가 오픈하는데 집주인 아저씨는 1년치 통째로 시즌티켓을 사는 분이셨다. 사정이 생겨서 못 가게 될거 같다고 그냥 자네가 다녀오게하며 표를 주신 것이니, 살다 살다 이렇게 얻어 걸릴 수도 있구나 싶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사진=구글)

 

도쿄 돔의 경우, 외부 유원지부터 시작해 국내에도 존재하는 쉐이크 쉑 버거부터 내부에 모스버거, 덮밥집, 유명 타코야키 체인인 '긴타코' 등 먹거리는 넘쳐나지만 사실 당시엔 내가 하이볼에 한참 빠져있던 시기라 하이볼만 석잔을 사갔다. 고시엔 시절의 경험과 더불어 어차피 웬만한 먹거리는 맥주통 메고 다니는 맥주언니들이 등에는 맥주, 가슴엔 간단한 땅콩이나 스낵 등의 안주들을 달고 다니며 판매하는지라 모자라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그 가벼운 안주가 거의 200엔에 하이볼 한잔이 650엔, 맥주 한잔 800엔이라는 거의 모친께서 출타하신 가격이긴 하지만 당시엔 표값이 굳었으므로 신나게 '비바 자이언츠'만 주변사람들과 같이 부르고 왔다.

 

일본에서 맥주언니는 비주얼과 체력이 모두 받쳐줘야 한다. 이쪽 출신 유명한 인물로는 도쿄돔 맥주 판매원 중에서도 하루 400잔을 팔았다던 전설의 맥주언니인 그라비아 아이돌 오노 노노카(おのののか)가 있다.

 

하루 400잔의 전설, 오노 노노카 (사진=구글)

 

실제로 도쿄돔에서 가장 인기 있는 먹거리라면 역시 도쿄돔 모나카 아이스와 머스타드 핫도그겠지만, 난 먹을거보다 술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 앉은 자리에서 에비스, 기린, 아사히와 츄하이부터 매실주, 칵테일, 정종 등등 여러 술을 앉아서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좋았던 것 같다. 경기가 끝나고 귀가한 다음엔 집주인 아저씨와 야구 얘기를 하면서 좀 더 친해졌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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