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 2049 (2017)

반응형
반응형

 부디 바라노니, 1982년산 <블레이드 러너>를 꼭 본 후에 이 영화를 봐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실 것. 사실 SF 영화에 열광하는 편은 아니지만 마침 내가 사는 동네에 새로운 멀티플렉스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어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보기로 결심을 했다. 그러나 전작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아는 내가 어떻게 전작을 보지 않은 채로 신작을 볼 수 있겠는가. 그저 난 최대한 이 영화를 존중하고자 했을 뿐이다.


 영화 상영 시간 2시간 전부터 극장 로비에 앉아 <블레이드 러너>를 VOD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다. <블레이드 러너>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난 이 영화의 장르에 굉장히 긴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이를테면 오리엔탈 사이버 펑크 디스토피아 누아르 같은 그런.


 그렇게 황홀한 116분이 지나고 난 곧바로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보기 위해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나의 실수는 어디서부터일까? 전작을 본 것? 신작을 본 것? 아니면 상영관에 팝콘 안 사가지고 들어간 것? 사실 내가 기대한 것은 전편을 능가하는 스케일과 비쥬얼이었다. 그렇잖은가. <블레이드 러너>가 개봉한 해에 태어난 아이는 지금 대리, 혹은 과장이 되어있을 테니.


 본론부터 말하자면 1982년의 <블레이드 러너>는 오리엔탈 사이버 펑크 디스토피아 누아르가 맞지만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디스토피아 삽질 신파극이라고 해야 옳다. 이해한다. <블레이드 러너>의 감독은 리들리 스콧이었고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감독은 드니 빌뇌브니까. <컨택트>라는 영화의 감독인데, 이 영화 역시 SF적인 면보다는 드라마에 좀 더 힘을 준 작품이다. 원작인 <네 인생의 이야기> 또한 SF를 차용한 훌륭한 드라마이니. 무튼 난 <컨택트>는 썩 잘 보았다. 드니 빌뇌브가 새로이 첨가한 설정이나 상황들이 극영화로서의 서스펜스를 조금 더 이끌어내는 것에 한몫한 것 같아 좋았다. <Arrival>이 아니라 <컨택트>인 그 제목은 좀 문제적이지만. 여튼 근데 <블레이드 러너>는 극강 비쥬얼의 사이버 펑크이자 누아르인데 빌뇌브는 이걸 아예 무시하기로 했나, 싶은 오해마저 들었다. 누아르는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몰라도 각기 다른 장소의 각기 다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강한 색채들을 관객들에게 보이겠다는 의지 밖에는 안 보이더라. 게다가 전편 <블레이드 러너>보다 35년이 더 지났는데 모르기는 몰라도 그 35년의 세월 사이 그 어디쯤 아포칼립스라도 한 번 도래했던 것인지 이것이 35년 후의 SF로구나, 싶게 만족시킬만한 그림이 안 나오더라. 그 35년 사이에 인류는 아무런 발전을 못했나보다. 하긴, 생각해보면 201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블레이드 러너>의 여러가지 요소들 중에서 2017년의 우리가 구현할 수 있는 건 불이 켜지는 우산대 말고는 없다.

2049년의 세계는 사이버 펑크의 유행 따위는 이미 지난 것인지 다들 패션모델 같은 옷을 입고 있더라. 하던 액션을 그만두고 갑자기 다들 캣워크를 할 것만 같은 젠 스타일의 세트하며…

 

 게다가 이 영화, 상영시간이 무려 163분이나 된다. 1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라이언 고슬링에게 한껏 이입해 있던 관객들은 라이언 고슬링의 어떠어떠한 점이 밝혀지자마자 화가 나거나, 참을 수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오거나 둘 중 한 가지다. 참고로 나는 후자였다. 이 영화는 정말 지리멸렬한 163분짜리 드라마이다. 아, 그리고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던데 요즘 이런 그래픽은 변신자동차 또봇에서도 아마 구현 가능할 것이다. 도대체 미래를 보여주고 싶은 게 맞긴 한 거야?

 라이언 고슬링 얼굴만 163분 보겠다면 추천드리지만 글쎄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볼 거라면 1982년의 <블레이드 러너>는 모르는 채로 가는 것이 득일 것이다. 참, 그리고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것은 축하드린다. 벡델 테스트의 통과 여부가 영화의 작품성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Copyright ⓒ 조태석


ⓒ 조태석

반응형

'황색문화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킬링 디어 (2018)  (8) 2018.07.05
서버비콘 (2017)  (0) 2018.02.24
덩케르크 (2017)  (0) 2017.07.20
옥자 (2017)  (0) 2017.07.06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2015)  (0) 2017.06.28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