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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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석의 영화 뒷북치기 첫 번째. 재미있지만 나쁜, 나쁘지만 재미있는 영화 <Kingsman: The Secret Service>

 

 한동안 열기가 대단했다. SNS에서 수없이 많은 사진들을 본 것 같다. 멋지고 화려한 장면들이었다.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600만 정도 들었다나. 각 나라 인구수 대비 우리나라가 관객수 2위라고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 많이 흥행했는지는 궁금하지도 않다. 뻔하지 않은가,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재미있으면 두번이고 세번이고 계속 보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고. 또 이 영화만큼 재미있는 영화, 충무로엔 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1초도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유흥으로 꽉 찬 영화는 우리나라에 아마도 없다. 나라도 극장에서 열 번은 봤을 것이다. 그렇지만 난 당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았다. 유행에는 중독성과 전염성이 있어서, 실제 가치보다 훨씬 크게 과장된 채 소문나기 때문이다.


 난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는 바쁜 척을 하지만 하는 일이라곤 집에서 영화 보는 것 밖에 없는데, 핸드폰이나 IPTV 서비스를 이용해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곧바로 드는 생각은 다음 영화는 뭐 볼까, 이다. 여튼 그러던 중 이 영화가 걸린 것이다. 그래, 이런 영화가 있었지. 당시 엄청났드랬지. 어디, 얼마나 대단한지 볼까.


 재미와 화려함으로 따지자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2015년 개봉했던 어느 영화도 이 영화의 재미를 쫓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화려함 뒤에 있다. 잘 생긴 남자들, 멋진 양복과 소품들, 수위 높은 액션, 독특한 캐릭터들의 뒤에 무엇이 가려졌는지 하나씩 이야기 해보겠다.


 먼저 이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여성 캐릭터들을 살펴보자. 먼저 에그시의 엄마. 그녀는 남편이 죽은 후로 인생이 망가져 건달의 애인이 되었다. 건달놈이 아들에게 손찌검을 해도 말릴 수가 없다. 이 엄마는 어찌 보면 이기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하긴 모성이 대단한 캐릭터였다면 에그시가 킹스맨이 되지도 않았겠지, 여튼.

 

 그리고 란슬롯. 그나마 비교적 가장 멀쩡하게 다루어지는 여성 캐릭터이다. 고소공포증이라는 핸디를 주고 대기권 밖에서 위성을 명중시키는 임무를 맡긴다. 에그시가 발렌타인의 방공호 안에서 화려하게 놀아나고 있는 동안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임무를 성공한 후 그녀에게 돌아온 칭찬은 "(Well done, Eggsy.) And you." 뿐이다.

 

 다음은 가젤. 그녀의 핸디 아닌 핸디에 대한 발상은 변태적이지만 기발하고 기발하지만 변태적이다. 이것은 내가 보이는 모든 것을 섹스와 연관시키는 사람이라서 그럴 지도 모르겠다. 쨌든 그녀는 바깥살림(액션)도 하고 안살림(손님접대)도 한다. 나라면 발렌타인을 노동청에 고소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유럽 어딘가의 공주. 국민들을 너무나도 아끼는 나머지 발렌타인의 계획을 저지하려다 그의 사설감옥에 갇힌 이 공주는 에그시에게 세계를 구하고 돌아오면 '뒤로'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 '뒤'는 도기스타일이 아닌 다른 '뒤'다. 그리고 아마 내 기억엔 이 장면이 그들이 처음 만난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 전이라고 해도 고작 두세 컷 전 정도일 것이다. 이런 게 스포일러가 될 리는 없지만, 아무튼 에그시는 세계를 구하고 공주의 '뒤'를 얻게 된다. 심지어 이 장면이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다.

 

 뭐, 여성 캐릭터들이 영화에서 하찮게 다루어지는 건 그렇다고 치자. 더 한심한 건 이 네 명의 여자들이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고 서로의 이름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왜냐면 이 영화에서 모든 사건은 남자들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Man이 인간의 기본형이라고는 하나, 이 영화에서는 정말 Kings"man" 들이 거의 다 해먹는다.


 그래, 뭐 벡델 테스트 따위를 신경쓰는 이가 얼마나 있으랴. 다 좋다. 그렇다 치자.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바로 '폭력의 Mtv화'이다. 류승완을 예로 들어보자(왜냐면 내가 아는 감독이 많이 없으므로). 류승완은 폭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류승완의 다찌씬을 보고 있자면 보는 내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 몸이 아플 정도이다. <베테랑>에서는 특히 심했다. 마지막 황정민과 유아인의 대치 장면은 정말이지 영화관을 꽉 채우는 뼈가 부러지는 사운드, 고기 망치가 고기를 내려치는 사운드, 난 이 영화가 왜 15세 관람가인지 알 수 없었다.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나도 이렇게 괴로운데 청소년들은 괜찮을까?

 

 그러나 매튜 본 같은 감독에 비하면 그건 기우였던 것이다. 그는 액션 장면을 정말 재미있게도 찍었다. 먼저 유명한 교회씬. 그는 그 교회의 광적인 분위기를 미국 내 한국 교회에서 따왔다고 했다. 쪽팔림을 금할 수가 없다. 여튼 그 교회는 정말이지 길고 긴 롱테이크처럼 보이는데 개각도 촬영을 한 것 같고 그것은 롱테이크처럼 보이게 하는 트릭을 군데군데 넣기 용이한 수단이었을 거라고 본다. 여담이지만 일단 나는 그것이 한 테이크라는 것을 절대 믿지 않는다. 그러나 관객들에게 한 테이크처럼 보이게 만들어 그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을 넋을 놓고 보게 만들었다. 사람 수십 명이 끔찍하고 잔인하게 죽어나가는 장면을 우리는 눈을 빛내면서 감상한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 비하면 뭐 이런 거야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명명한 '폭력의 Mtv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제대로 빛을 발한다. 사람의 머리가 하나씩 폭죽처럼 터져 나가며 배경음악으로는 Edward Elgar의 Pomp and Circumstance Military Marches, Op. 39가 흐른다. 그것도 음표에 맞추어 순서대로 하나씩. 소문에 매튜 본 감독은 영국에 아직 남아있는 계급문화를 풍자하고자 그런 장면을 넣었다고 하는데, 절대로 워킹 클래스일 리가 없는 백인 남자가 그런 풍자를? 헛소리다.


 솔직히 이 영화 재미있다. 너무 재미있어서 그게 문제다. 영화는 단순한 구조의 컨텐츠가 아니다. 좋다, 혹은 나쁘다, 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영역이다. 솔직히 내가 이런 걸 짚고 넘어가는 것에 대해서 누군가는 날 의식있는 척하는 겁쟁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폭력의 수위와 미화는 점점 더 심해진다. 그리고, 그래서 오늘날 킹스맨 정도의 수위까지 오게 된 것이다. 킹스맨은 100% 오락영화다. 극장 밖,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선 모두 잊고 129분 동안 매튜 본이 보여주는 것만 보면 된다. 매튜 본이라는 백인 남성이 가지고 있는, 본인도 미처 인지 못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관념들, 더욱 더 미화된 폭력에 대한 상상들을 우리는 화려함이라는 MSG에 버무려 같이 씹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영화, 그 뒤에 숨은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고민해보는 것은 전혀 고루固陋한 일이 아니다.

 

Copyright ⓒ 조태석


ⓒ 조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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