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 (2017)

 

 사실 내가 전쟁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 전쟁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말이 전쟁이지, 우두머리들의 스타크래프트 놀이나 다름 없다. 수없이 죽어나가는 마린들. 그들의 이야기는 없다. 오직 테란이 이겼느냐, 프로토스 혹은 저그가 이겼느냐 하는 결과만이 중요하니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좋아한다만 전쟁영화지 싶어 넘기려던 차에 광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성우의 멘트. "이것은 전쟁영화가 아니다."

 그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전쟁영화가 아니다. 누가 봐도 전쟁영화일 수 없도록 만들어놨다. 전쟁영화가 성립이 되려면 아군이 있고 적군이 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엔 적군이 없다. 정확히는 적군의 얼굴이 없다. 땅에서 사격을 하고 공중에서 폭격을 하지만 독일군의 얼굴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효과적인 설정이다. 어떤 인물이 등장하면 그 인물에게는 반드시 전사나 사건이 일어나야 하므로 독일군이 나오는 것은 적절치 않다. 조명되는 것은 오직 영국군과 프랑스군 뿐이다. 정확히는 생존하고자 하는 군인들.

 아이돌 콘서트도 아니고 개봉일 조조 맨 뒷자리 가운데를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눈치싸움을 벌인 결과 그럭저럭 맨 뒷자리의 정가운데에 가까운 자리를 예매하는데 성공했다. 광고가 끝나고, 에티켓이 나오고, 영화가 시작되는데. 어, 이상하다. 화면이 왜 이렇게 플랫하지. 와이드한 비율일줄 알았는데 완전히 플랫하다. 허나 적절했다. 와이드했다면 오히려 답답함을 유발했을 것이다. 꾸밈없는 화면비 덕에 좀 더 영화에 이입하는 것이 가능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설국열차>가 생각났다. 다른 공간, 다른 공간 속의 다양한 군상들, 다양한 사건, 그리고 고립. 쨌든 놀란은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들을 영웅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적군의 구체적인 얼굴이 없으므로 보는 관객들은 힘의 높낮이를 예측할 수 없다. 어쩌면 보이지 않아서 더 관객으로 하여금 덩케르크 해변의 군인들에 이입되어 공포에 떨 수 있는 효과를 주었을지도. 이 점은 영화를 지배하는 서스펜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덩케르크 철수 작전 속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창조된 캐릭터일 것이다. 사람의 목숨에 가치를 따지는 사람, 포기하지 않는 선장, 살아남기 위해 비겁해지는 군인, 역사의 일부가 되고 싶어하는 민간인, 겁에 질려 미쳐버린 군인. 이 영화 속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단지 영국군이 철수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밑바탕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은 수많은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그뿐이랴, 놀란 감독의 물량공세야 모르는 사람이 없지. 최근 류승완도 돌연 "내 배우들을 블루스크린 앞에서 연기하게 하지 않겠다"며 220억을 투자받아 세트를 다 지어버리던데, 뭐 아무튼 본전 뽑으시길. 무튼 이 영화는 정말이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사실적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크리스토퍼 놀란처럼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CG로 대체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린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엔 말도 안되는 백전백승 캐릭터가 없고, 모든 캐릭터에겐 각각의 전사 혹은 사건, 뚜렷한 성격이 있으며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와 맞아떨어져 아주 좋은 그림을 뽑아낸다. 뭐 개개인에겐 취향이 존재하는 법이다만 전쟁 영화 싫어하는 나도 아주 잘 보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 감독이 아니다. 그를 깎아내리려는 쇼 비지니스는 존재할지 몰라도,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늘 그렇듯 명확한 이야기를 명확한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런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고 나면 항상 드는 생각은, 역시 전쟁은 나쁘다는 것이다.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다. 이 점만은 모두가 알아야 한다.

 

Copyright ⓒ 조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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