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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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많고 탈도 많고 덩치도 크고 게다가 글로벌하기까지 하다. <옥자>는 그런 영화다. 극장 상영날짜와 맞추어 동시에 공개하는 것을 조건으로 Netflix에서 5,000 만 달러 투자를 받아 만든 영화인데, 이에 삐진 멀티플렉스는 봉준호에게 "너랑 안 놀 것"을 선언한다. 그러나 친구는 CGV, Megabox, Lotte Cinema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극장도 있고 서울극장도 있고 건대시네마도 있으며 씨네큐브, 필름포럼 등등 많다. 관객들과는 그동안 좀 소원했던 친구들이지만.


 여튼 개봉 1주차에 152,598명인데 사실 <옥자>의 관객수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Netflix의 수익은 집계에서 제외되어 있으니까. 사실 이런 식의 개봉이 완전히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안될 것 같다 싶은 영화는 아예 IPTV와 극장 개봉을 동시에 한다. 기자 수십명 모셔서 제작보고회, 언론시사회 등등 제대로 크게 홍보 한 번 해보지도 못하는 그런 영화들. 그렇지만 봉준호가 하면 그 의미가 다르다. 멀티플렉스와 영화인 사이의 힘겨루기 구도로 언론에서는 몰아가는 분위기이지만, 봉 감독에게는 이러나 저러나 하등 손해날 것이 없다. 왜냐면 봉준호니까. 봉준호라는 이름은 무엇이냐, 하면 다음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는 감독이라는 뜻이다.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는 감독, 이 말이 쉬워보이는가? 흥행 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스무 명도 안되잖아. 사실 흥행으로 치면 박찬욱도 이 기준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작품성을 인정받거나, 흥행이 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하는데 지금 충무로에는 입봉작 한 편 찍고 다음 영화 못 찍는 감독들이, 데뷔는 했지만 뜨지는 못하는 아이돌만큼이나 많다. 입봉조차 못한 채 현장만 전전하는 영화인은 그보다 더 많다. 그러나 봉준호는 영화를 찍는 와중에도 다음 영화를 기획할 수 있다. 왜냐면 잠재적 투자자들이 줄을 섰기 때문이다. 그건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돈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누가 이런 걸 궁금해하겠나, 영화만 재밌으면 그만이지. 그래. 난 일주일 전 <옥자>를 보러 대한극장에 갔다. 충무로역 1번 출구와 대한극장 지하1층이 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출입이 용이하더라. 막상 극장에서 헤매면 어떡하나 고민했는데 1층에 올라가자마자 여느 멀티플렉스와 마찬가지로 티켓발권기가 있었고 티켓박스가 있었고 매점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각 극장의 홈페이지나 어플을 통해서 예매를 하면 좌석까지 지정해서 예매할 수 있더라. 이걸 왜 몰랐냐면 나는 Naver에서 예매했거든. Naver에서는 예매 순서대로 좌석을 지정한다. 극장 홈페이지나 어플을 통해서 예매하는 걸 추천한다.


 이하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읽지 않기를 권하는 바이다. 그러니까, 나는 분명 <괴물>보다 더한 게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한국과 뉴욕을 오가는데다, 헐리우드 배우, <괴물> 제작비의 두배,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있으니 <괴물>보다 분명 10배는 더 좋은 영화일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영화는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좀 많이. 그래, 뭐 봉준호라고 맨날 홈런치라는 법은 없다. 무튼 패착의 요인을 생각해보건데, 내가 볼 때는 빈약한 서브플롯과 과장된 캐릭터, 한국과 뉴욕이라는 장소간의 완전히 동떨어진 느낌.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괴물>은 대단히 잘 써진 시나리오다. 시나리오에 대해 공부할려면 <괴물>을 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흥미롭게 흘러가는 메인 플롯의 기저에 깔린 서브 플롯의 시대 반영, 그리고 그것에 대한 풍자와 은유들. <옥자> 역시 그런 것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난 어쩐지 이 영화가 네다섯 편의 나눠진 에피소드처럼 보였으며 그로 인해 영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물론 산골, 서울, 맨하탄, 실험실, 이런 로케 혹은 세트들이 같은 그림처럼 보일 수는 없는 일이지, 당연하게도. 그렇지만 이런, 자연스럽지 못하고 찜찜한 느낌 무얼까.

 굉장히 과장된 성격을 가진 캐릭터들이 많은데 물론 왜 그 캐릭터를 그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머리로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것이 스크린에 펼쳐졌을 때, 굉장히 이질적으로 보이는 점이 있다. 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종내에는 봉준호만큼의 권력을 가진 다른 연출자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럴 리가, 싶지만 알 수 없는 것이 영화판.


 이래저래 좀 삐그덕 거리고 빈약한 느낌이기는 해도 <옥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많은 의미를 영화 속에 녹여낸다. 그것들을 정리하다보니 하나의 단어가 보였는데, 바로 과욕이었다.


 미란도에서는 기아飢餓를 핑계로 유전자 조작 생물을 만들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려 하는데, 이것은 미자의 산 속 삶과 완전히 대비되어 보인다. 미란도에서는 수많은 슈퍼피그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도축하고 가공하기 위한 공장을 마련하고, 수없이 많은 슈퍼피그들을 잔인하게 도살한다. 한편 미자의 삶은 어떤가. 푸성귀와 물고기를 그날 그날 먹을만큼만 산에서 얻어와 한 끼 식사를 마련하지 않나. 심지어 옥자도 대봉감 하나면 만족한다. ALF 멤버들 중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 캐릭터를 보면 알겠지만 봉준호가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아무 것도 먹지 마라" 가 아니다. 자연에 전혀 손대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먹을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라는 것이다. 미자의 산 속 삶처럼. 그와 완전히 똑같이 하는 것은 불가능해도, 노력은 하라는 거지. 간단하다. 과식만 안 하면 된다. 우리의 과식은 더 많은 소와 돼지를 도살시킬 테니까.

 

Copyright ⓒ 조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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