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쌈과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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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기억은 '메로나'였다. 그 해 여름은 매일같이 메로나를 입에 달고 살았다. 아이스크림이라고 하면 무조건 메로나였다.

 

다음으로 기억나는건 '농심 포테토칩' 이다. 오다가다 들르게 되는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어린 무우상은 늘 포테토칩을 집었다. 과자 = 포테토칩 이었다.

 

이상한 성격덕인지 머리가 나쁜것인지 이유는 몰라도 무우상은 한번 꽂히면 매일같이 같은것만 먹어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자신만의 기준은 있어도 한번 정하면 좀처렴 바뀌질 않는다. 라면은 십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오징어 짬뽕'이 베스트다. 새로운 제품들이 나오면 한두번씩 시험삼아 먹어보긴 하지만 아직까지 '오징어 짬뽕'의 벽은 넘지 못했다.

어쩌면 귀찮음인지도 모르겠다. 한번 노력해서 베스트를 정해두면 다시는 고민하고 방황할 필요가 없으니까 어느정도 기준을 맞춰주는 한에서 자신만의 베스트를 찾아 그것에 안주한다. 그것이 무우상의 스타일인지도 모르겠다.

 

2008년 언저리였던것 같다. 그때의 화두는 '보쌈' 이었다. 갑자기 보쌈이 땡기긴 하는데 아직까지 '무우상의 베스트 보쌈'이 정해지지 않았던 시절이라 여기저기 발품을 팔았다. 각종 신문기사, 잡지, 블로그 등을 돌아다니며 믿을만한 냄새가 나는 유명 보쌈집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두고 한번씩 다 둘러보았다. 저녁약속을 정하거나 내가 스스로 메뉴를 정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그 가게들을 하나하나 방문하며 리스트에서 지워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종로5가역에서 퇴계로 방면으로 청계천을 넘어 조금 더 나아간 곳에 '장수보쌈' 이라는 가게를 발견하고 찾아가 보았다. 아쉽게도 일요일이라 정기휴일이었지만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냥가기 아쉽기도 하고 혹시나 싶어 말씀을 건네보았다.

 

안에서 이것저것 볼일을 보시던 인상좋은 할머니 한분이 나오시며 오늘은 휴일인데 잠깐 일이있어 들른것 뿐이고, 영업은 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쓸쓸한 기분으로 돌아가려 하는 그때에 할머니께서는 콜라를 한잔 따라주시며 이것도 인연인데 이거나 한잔 마시고 가라고 하셨다. 감사히 콜라를 받아 마시면서 이런저런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 가족들이 이제 그만하라고 하는데도 할머니는 아직 가게에 정이들어 계속 일을 하고싶으시고 근처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의 식사를 위해서 아침 6시에 문을 연다는 말씀. 자세히 보니 가게에는 보쌈 이외에도 식사용 메뉴들이 몇가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 말씀들을 들으며 다시 찾아오겠노라 다짐하고 우선 자리를 떴다.

후에 알아보니 원할머니 보쌈이 처음 만들어질때 주방에서 계시던 할머니가 후에 독립하셔서 차리신 가게라고 한다. 처음에는 '원보쌈' 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장사하셨고 지금도 그렇게 부르시는 손님들이 많이 계시다고. 메인이 되는 보쌈을 주문하면 투박하지만 높게 쌓아서 씨뻘건 국물을 끼얹어 내오는 김치가 한눈에도 자극적인 모습으로 시선을 끌고, 적당히 부드럽고 촉촉한 고기가 잡내도 거의 나지않는 맛있는 보쌈이었다. 보통 나오는 쌈장이나 된장대신 초고추장이 소스로 나오는 것도 특징. 따끈한 콩나물국으로 입술을 축이고 보쌈고기 한점에 빠알간 김치를 얹어서 크게 입속으로 밀어넣으면 소주가 자연스래 따라온다.

 

사람이 많은 경우에는 2층을 내주시기도 하는데 나무로된 좁은 계단과 아지트 같은 공간이 마치 친구네집 다락방에 올라온 기분이 든다. 그 다락방은 바닥이 약간 기울어져 있는것도 재미라면 재미. 요즘은 고기질이 예전만 못해서 조금 아쉽지만 가게 전체에서 풍겨지는 고즈넉한 그 정취만으로도 사람사는 냄새와 함께 소주한잔 기울이기에는 더할나위 없는 집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밤 보쌈한점 어떠신가?

 

Copyright ⓒ 무우さん。


ⓒ 무우さ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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