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를 나눈 남자, 벳쇼 아키라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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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의 이적 하나로 단일리그가 양대리그로 갈리게 된 상황이 정말 납득이 안 갈수도 있겠지만 이는 당장 리그의 조정과 행정을 맡은 당시 일본야구연맹의 태생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일본야구연맹의 커미셔너 쇼리키 마츠타로(正力松太郎)는 요미우리 신문의 사장이기도 했다. 당연히 팔이 안으로 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마이니치 오리온스를 그토록 반대한 것 역시 요미우리의 경쟁사였던 마이니치 신문의 참여를 막고자 했던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친 요미우리 진영과 반 요미우리 진영이 정확히 동률을 이뤘고 애초에 쇼리키가 주장한 '1리그 10구단'에서 참가를 희망하는 구단이 늘어나자 찬성파는 리그를 둘로 나누고 나머지 구단은 마이니치와 같은 리그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리그가 갈라지게 된다. 하지만 요미우리와 다른 의견이었던 마이니치 찬성파의 한신 타이거즈는 "우리는 요미우리가 있는 리그에 남을 것"이라며 입장을 바꾼다.

 

리그를 나눈 남자, 벳쇼 아키라 2부가와카미 데츠하루(川上哲治)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왼쪽)과 함께 있는 쇼리키 마츠타로 일본야구연맹 커미셔너(오른쪽) (사진=구글이미지)

 

이유는 간단했다. 한신은 요미우리가 둘도 없는 라이벌 팀이지만 또한 최고의 흥행카드이기도 한 요미우리와의 경기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야구연맹이 해체되고 난 이후에 다시 결성된 행정기구인 일본야구기구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커미셔너가 따로 존재하며 행징기구가 버젓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요미우리의 입김이 너무 강력해서 모든 정책이 요미우리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괴상한 구조가 되어 있었으며 사실상 NPB사무실과는 별개로 자기들끼리 논의해 야구계의 중대사를 처리할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식의 패악질에 가까운 행태는 당장 1950년대뿐만이 아닌, 2000년대에도 다시 나타나게 되는데 2004년 긴테츠 버팔로즈의 운영포기 사태 때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회장 와타나베 츠네오(渡邊恒雄)를 필두로 한 보수파 구단주들의 단일리그제 환원에 맞선 현역 선수들과의 분쟁 사건인 '일본 프로야구 선수회 사태'가 그 것이다.

 

리그를 나눈 남자, 벳쇼 아키라 2부와타나베 츠네오 전 요미우리 자이언츠 회장. 그는 2016년 야구 도박 사건까지 가서야 고문직에서 사퇴한다. (사진=구글이미지)

 

당시 프로야구 선수노조 위원장이자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일본야구 역사상 최강의 포수 중 하나였던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후루타 아츠야(古田敦也)는 각 팀 주축선수들을 설득해 긴테츠와 오릭스, 다이에와 롯데의 합병을 반대하며 파업까지 불사하고 특유의 지도력과 냉철함으로 양대리그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한 결과 겨우겨우 새로운 구단을 공모해 리그와 양대리그에 연관된 인원의 고용을 어느정도 유지하는 데 성공하면서 가히 '신승'이라 할만한 성과를 이뤄낸다.

 

물론 처음부터 후루타가 파업을 결정한 것도 아니었고 원만한 대화를 위해 구단주들과 대화를 시도하려 노력했으나 그런 후루타의 시도를 당시 요미우리의 회장 와타나베 츠네오는 "고작 선수 주제에 무례하다."는 이유로 대화를 거부하면서 어이가 에도시대로 날아가는 발언을 했고 결국 그 발언사건으로 인해 그 후 후루타에게 악수를 청하기 위해 구단주 측의 측근을 보내지만 후루타 역시 "지금은 편하게 악수를 할 입장이 아니다."며 악수를 회피하면서 이 장면이 전 일본에 생중계가 된다.

 

리그를 나눈 남자, 벳쇼 아키라 2부후루타의 은퇴경기 때 마지막으로 타선에 선 후루타 아츠야에게 당시의 실황 캐스터는 "후루타 씨의 활약이 없었다면, 지금의 프로야구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사진=구글이미지)

 

와타나베 츠네오 본인에게는 분통이 터지는 한 해였을 2004년의 피날레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마추어 선수 영입을 위한 금전 부정수수(리베이트)문제가 터진 것이다. 흔히 '이치바(一場) 사건'이라고 하는 사건으로 요미우리가 신인투수 이치바 야스히로(一場靖弘)의 영입을 위하 2003년부터 7개월간 식대, 교통비, 용돈의 명목으로 총 200만엔의 현금을 전달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요미우리 뿐만 아니라 한신과 요코하마에서도 각각 25만엔과 60만엔을 이치바에게 건넸다는 사실이 추후에 주간지를 통해 밝혀졌다.

 

프로 구단이 학생들에게 리베이트나 뒷돈을 전달한다느니 하는 소문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엄연히 학생야구의 영역을 프로야구 구단에서 입단을 조건으로 금품을 지급하거나 빌려주는 것은 당연히 법적으로 금지된 사항이므로 학원스포츠판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자 일본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로 인하여 한신, 요미우리, 요코하마의 구단주 3명과 한신 타이거즈의 사장이 사임했고 이치바 야스히로와 메이지대학 감독 역시 대학야구계를 떠났다. 이 때 와타나베 츠네오 구단주 역시 회장이자 구단주에서 특별 고문이라는 명목상의 직책으로 물러났으나 일본 특유의 흑막정치를 보여주듯이 꾸준히 영향력을 행사하다 요미우리 소속 선수 3명의 야구 도박 사건에 책임을 지고 2016년이 되어서야 형식상으로나마 고문직마저 사퇴하게 된다.

 

리그를 나눈 남자, 벳쇼 아키라 2부이치바 야스히로(一場靖弘) (사진=구글이미지)

 

종목을 막론하고 어느 힘있는 특정구단이 특권이라는 이름의 전횡을 휘두르는 것은 굳이 일본만의 일도 아니고 당장 우리나라 역시도 모기업의 힘을 토대로 거의 패악질에 가까운 선수수급과 창단으로 논란이 되었던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창단 건이 있었다. 물론 프로스포츠 세계란 돈으로 굴러가는 생태계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가장 성적이 좋은 구단이나 협회 재정에 도움을 많이 주는 구단, 인기있는 구단이 발언권이 센 것은 당연하지만 그 인기와 성적의 발판에는 그 구단보다는 좀 더 아래 순위에 있는 팀이 있고 그 구단과 대적하는 또 다른 팀들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티라노사우르스가 백악기 최고의 공룡이라고 하지만 먹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리고 어느 영화에서처럼 티라노사우르스와 대적할 수 있을만큼 강한 공룡 역시도 필요하며 티라노사우르스 역시 다른 공룡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는 환경이 생태계 아니었던가. 돈으로 승리를 살 수는 있지만 승리 역시 같이 대적할 팀과 패배하는 팀이 존재해야 승리가 가능하지 그저 고인 물 속에서 혼자 석권하고 올라서봐야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해 질적인 저하마저도 유발할 수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절대 긍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모든 스포츠팬들이 바라듯 지속가능한 강팀은 중요하지만 그 지속의 발판이 금전을 토대로 한 상도의를 넘어선 패악에 가깝다면 그런 패악 역시도 동업자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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