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슨의 위기와 음악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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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도 결국 메이저는 못 되고 망했지만 밴드를 했었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밴드 망하고서도 세션으로 몇 년 버티다가 대학교 졸업한 입장에서 밴드 생활할 동안 깁슨(Gibson)과 펜더(Fender)의 이름을 모른 채로 살아오진 않았던 터라 이번 깁슨의 파산위기 소식은 더욱 충격이었다. 록의 시대에서 펜더, ESP 등과 함께 전 세계를 호령하고 수많은 기타 키드를 양산한 깁슨이라는 큰 공룡이 쓰러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미 페이지 (Jimmy Page) (사진=LA Daily News)

 


 

1. 시대의 흐름

 

최근 PC의 발전방향은 워낙에 비약적으로 빠른 편인지라 당장 3년을 심사숙고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걸작 'Kid A'가 나온 시점이 2000년이었고 그때 라디오헤드의 결론은 '이럴 거면 밴드를 하는 이유가 없잖아?'였다. 밴드 전체가 머리를 굴리고 준비해 가며 고생한 앨범의 전체적인 색은 록의 범주를 상당히 벗어나는 일렉트로니카 위주의 앨범이 되었고 당장 너바나의 자리에 잠시 군림하던 또 다른 거목인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 역시 해체 선언 후 발매된 전성기 라인업의 최후 앨범이라고 할만한 'Machina'에서는 사이키델릭 록이나 얼터너티브 스타일이 아닌 일렉트로니카 성향의 앨범에 사이키델릭 한 분위기는 양념을 치는 정도로 그쳤다.

 

밴드 음악의 소멸은 아마 세기 초부터 거의 예견된 게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정통 록 밴드들은 유독 고전한다. 그 후로 팝 펑크나 포스트 펑크 시대의 과도기를 거쳐 좀 더 뒤에 이름을 날리게 되는 밴드인 콜드플레이(Coldplay)나 킨(Keane) 같은 신진 밴드들은 아예 엠비언트필나게 키보드 섹션을 넣거나 일렉기타가 없는 밴드 구성을 취하게 된다. 그만큼 기술이 발전하며 예전엔 생각도 못할 음들이 풍부하게 뽑혀 나왔고 아예 롤러코스터의 두 번째 앨범처럼 대놓고 홈 레코딩으로 앨범을 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시대가 변했다.

 

스트라토캐스터(펜더) vs. 레스폴(깁슨)

 

최근에 인기를 얻고 있는 장르 중 하나인 누 디스코는 아예 디스코 시대에 잘 나가던 베이스 슬랩음이나 기타 커팅 주법 백킹음을 샘플러로 따오거나 신시사이저로 가공해서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막상 누 디스코의 백킹이나 카피를 일렉트릭 기타나 베이스로 하지만 정작 DJ들은 일렉기타 없이 그저 DJ 셋만 가지고도 연주가 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깁슨의 운영진은 과연 언제까지 '깁슨'이라는 이름값 하나만으로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2. 고가(高價)

 

깁슨 기타의 가장 큰 특징은 무거운 것도 아니고, 범용성이 좋은 것도 아니다.

 

비싸다.

 

그냥 펜더 기타 중에서 실전용으로 쓸만한 미펜 기타가 150만 원을 겨우 넘기는 신품가로 구할 수 있고 역시 겨우겨우 실전용에 걸치는 멕펜 펜더 기타를 80만 원대에 구한다고 감안하면 깁슨 기타는 기본 실전용으로 쓸만한 레스폴의 경우 거의 200만 원대를 호가하며 레코딩용으로나 쓸법한 스튜디오 버전이 최하 200만 원에 세일해도 150만 원 정도를 각오해야만 한다. 게다가 신품 레스폴 스탠더드가 400만 원대부터 시작하는 가히 커스텀 샵급의 가격대이니 감히 엄두도 못 낼 수준인 데다가 그렇다고 저가형인 에피폰을 사서 실전용으로 쓰기에는 저가형 이미지가 박힌 것과 더불어 에피폰을 실전용으로 쓸만한 배선으로 교체하고 픽업이나 여타 부품들을 교체하는 데 에피폰 기타 가격만큼의 돈과 시간이 들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억울하면 딴 거 사서 쓰던가' 하는 수준에 가깝다.

 

물론 깁슨사에도 할 말은 있다. 상기의 펜더의 경우엔 양산형 악기를 통한 음악 연주의 대중화를 이끈 악기 브랜드이며 이는 클래식 악기처럼 한 덩어리로 붙여서 제작하는 깁슨의 방식과는 달리 장인들이 각 피츠를 분업을 해서 만드는지라 대량생산엔 좀 더 용이하고 그만큼 더 가격을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깁슨은 그게 어려웠다.

 

그리고 목재의 문제도 있었다. 기타의 지판과 몸체의 소재인 로즈우드와 마호가니의 벌목이 금지되고 원자재를 수입하는데 고생을 많이 해야만 했으며 수입과정이 복잡한 만큼 비용도 올라갔다. 물론 펜더가 이곳저곳에 공장이 있는 것처럼 깁슨에도 멤피스, 내쉬빌 등 공장이 3개나 있지만 한 공장에서 조립과 바디 생산이 모두 가능한 펜더와 달리 깁슨은 멤피스와 네쉬빌의 각 공장에서 각각 손이 빈 할로우 바디, 속이 꽉 찬 솔리드 바디를 만들어 몬타나의 보즈만에 보내 조립한다. 이런 식으로 생산하니 1달에 겨우 60대의 기타만 생산할 수 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장인의 손길을 통해 뛰어난 음향을 구현하려던 콘셉트이었던 건 인정하지만 시장 축소는 생산 경쟁력마저도 잃게 만들었다.

 

깁슨의 현 오너 헨리 저스키위츠 (Henry Juszkiewicz) (사진=더 비즈니스 저널)

 


 

3. 경영진

 

깁슨의 현 오너인 헨리 저스키위츠(Henry Juszkiewicz)는 깁슨 브랜드에 대한 애착이 깊었고 깁슨이라는 이름을 '음악계의 나이키'로 만들고 싶어 했다.

 

헨리 저스키위츠 체제 하의 깁슨은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새로이 조직된 깁슨 이노베이션스는 2012년 일본의 스피커, 헤드폰 전문기업인 온쿄의 자본에 참가했으며 온쿄의 자본제휴 관계사인 주식회사 티악을 자회사화 했다. 2014년엔 시퀀서인 소나로 유명한 미국의 케이크워크를 인수했고 피델리오로 알려진 네덜란드의 대표기업 필립스의 오디오 사업부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1억 3500만 달러를 들이면서 상당한 빚을 떠안게 되었다.

 

물론 깁슨은 역사를 자랑하는 악기회사인 만큼 자금 유동성이 매우 좋았고 설마 빚을 내더라도 회전율이 워낙 좋아 충분히 관리가 가능하리라고 믿었지만 시대의 조류를 따라가지 못한 채 무리한 인수합병을 통한 사업 확장은 생각만큼 순조롭지가 않았다. 깁슨은 악기부문에서는 펜더와 더불어 양강을 형성한 역사와 전통의 브랜드였지만 새롭게 뛰어든 음향가전 시장에서는 그저 어린애에 불과했고 더 큰 업체들과 각축전을 벌이는 동안 빠져나간 현금과 자본은 부채만 해도 한화로 환산해 약 6000억 원에 달했던 것이다.

 

물론 악기부문에서는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만큼 깁슨의 브랜드를 의심할 여지는 없지만 당장 현금 확보를 위해 할로우바디 기타 바디를 주로 생산하던 멤피스의 공장을 이미 매각해서 임대해 사용 중이고 원자재와 부품값을 제때 조달하지 못한 결과로 전체 수급이 모두 일그러져 대부분의 깁슨 딜러들이 파산하거나 금융구제를 받아야만 했다. 이로 인하여 다시는 깁슨과 거래하고 싶지 않다는 딜러들이 생길 만큼 악기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신용과 더불어 유통망이 붕괴해버렸다.

 

깁슨의 패착요인이 악기산업의 몰락이라기 보다는 무분별한 M&A 이라는 쪽으로 많은 비중이 더해진다. (사진=메탈석스)

 

깁슨은 이번 여름까지 5억 6천만 달러의 부채를 갚아야만 하는 상황이었지만 현재 채권자들이 경영권을 일부 분담하고 악기에만 전념하는 조건으로 긴급자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나마 채권자의 2/3 이상이 깁슨의 회생지원에 합의해서 기타 제조와 악기사업은 그대로 유지하고 경영정상화를 위한 사업구조 등의 재조정을 실시하게 되었는데, 이는 깁슨의 패착 요인을 악기산업의 몰락으로 인한 문제로 보기보다는 무분별한 M&A 쪽이라는 분석에 더 많은 비중이 더해진다. 현재 깁슨의 악기시장 점유율은 일렉기타에서만 22%에 달하고 2000달러 이상 고가 악기 시장에서 40%를 차지하는 엄청난 수준이라 회사의 밥줄이자 코어 비즈니스인 악기시장에 다시금 몰두하면 빠른 시일 내에 경영 정상화가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대의 조류에 맞추지 못하거나 여러 이유로 파산했던 기업으로는 멀게는 이스트먼 코닥이나 가깝게는 노키아 같은 기업이 있으나 코닥은 영화 필름 생산과 특허의 대량 처분으로 회생에 성공하여 인쇄 출판 쪽에서 본업을 유지하며 여전히 군림 중이고, 노키아는 스마트폰 사업을 매각하고 네트워크 관련이나 헬스케어로 사업분야를 변경해 다시금 스마트폰 업계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깁슨도 마찬가지다. 전자악기 업계에서 깁슨은 코닥이나 노키아보다 더 대단한 기업이다. 그리고 모든 수많은 아마추어 기타리스트들의 꿈이자 이상향인 이름이 깁슨이다.

 

깁슨 기타톤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슈퍼 스트랫의 시대 이후 다시 찾아온 위기를 잘 극복하고 깁슨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똑바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

 

깁슨은 수많은 아마추어 기타리스트들의 꿈이자 이상향이다. (사진=The Industry 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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