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내게는 이른바 슬럼프라고 할만한 것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슬럼프는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이기도 하지만, 영화라는 산업과 그것의 문화적인 측면에 대해 점점 실망하게 되었다는게 정확하다. 그렇지 않은가? 굳이 다른 예를 들지 않아도 엄청나게 장사가 잘 되는 현재의 이 미친 히어로 프랜차이즈라면 설명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영화를 구매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순수하다. 삶에 지친 그들은 실제로는 있을 수도 없는 - 비대한 악의를 가진 - 안타고니스트를 신나게 물리치는 영웅들의 위대한 자기희생에 감동하고 즐거워하며 상영시간 동안만이라도 그들 자신의 삶을 위로한다. 그리고 이런 그들을 아무도 탓할 수는 없다. 언제나 그렇듯 공급이 문제라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런 문제라면 책 한 권을 쓸 ..
조태석의 영화 뒷북치기 두 번째. 올바른 덕질이란 무엇인가? 덕질이란 무엇일까. 대리만족? 존경과 사랑? 수많은 답들이 있을 수 있지만 길(Robert De Niro 扮)의 덕질이 잘못된 덕질이라는 건 확실하다. 칼을 세일즈 하는 변변찮은 영업사원 길은 이혼남이며 아들의 양육권마저 빼앗겼다. 그가 온 마음을 바쳐 좋아하는 것은 야구다. 그 안에 인생에 대한 모든 메타포가 존재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특별히 애정 하는 선수 바비 레이번(Wesley Snipes 扮)이 자신의 홈 팀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해온다는 소식을 들은 길은 환호한다. 그러나 이적 후 바비의 성적은 예전만 못하다. 바비는 등번호 11번을 행운의 숫자라고 생각하는데 자이언츠에는 이미 11번 선수 후안 프리모(Benicio Del T..
간만에 정말 물건이라고 할만한 영화가 등장했다. 때까지만 해도 그저 새로운 감독의 새로운 화법에 많은 이들이 매력을 느낀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진짜 실력이었고, 에서 그것을 아주 제대로 보여준다. 그러니 를 조금 더 맛있게 먹고 싶다면 를 먼저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콜린 파렐을 다루는 법'을 예습한다 해도 나쁠 것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그가 콜린 파렐을 페르소나로 점찍은 게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이 매우 반갑다. 영화는 중년 남성과 10대 -로 추정되는- 소년의 대화로 시작하는데, 우리는 여기에서부터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뭐야, 둘이 잤어?" 라는 의문이 들어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는 콜린 파렐과 배리 케오간에게서 내..
조태석의 영화 뒷북치기 첫 번째. 재미있지만 나쁜, 나쁘지만 재미있는 영화 한동안 열기가 대단했다. SNS에서 수없이 많은 사진들을 본 것 같다. 멋지고 화려한 장면들이었다.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600만 정도 들었다나. 각 나라 인구수 대비 우리나라가 관객수 2위라고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 많이 흥행했는지는 궁금하지도 않다. 뻔하지 않은가,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재미있으면 두번이고 세번이고 계속 보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고. 또 이 영화만큼 재미있는 영화, 충무로엔 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1초도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유흥으로 꽉 찬 영화는 우리나라에 아마도 없다. 나라도 극장에서 열 번은 봤을 것이다. 그렇지만 난 당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았다. 유행에는 중독성..